나이 든다는 것의 무게

by 슈펭 Super Peng

저녁이면 부모님 방에 간다.

족욕 물을 가득 담고, 족욕 하기 전에 부모님의 얼굴에 팩을 붙여드린다, 아빠 어깨를 주무른다. 처음엔 그냥 효도라고 생각했다. 요즘 족욕이 좋다더라, 피부 관리 해드려야지,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시간이 무거워졌다. 부모님 얼굴을 가까이서, 오래 들여다보게 되면서부터.


얼굴에 팩을 붙이거나 바르려면 가까이 가야 한다. 그때 보인다. 눈가의 주름, 입가의 주름, 이마를 가로지르는 선들. 부모님은 햇빛을 많이 보는 일을 한다. 그래서 볼에 검버섯이 생겼다. 예전엔 없었는데. 언제부터 생긴 걸까. 팩을 붙이면서 손끝으로 엄마 피부를 느낀다. 탱탱하지 않다. 얇아졌다. 이게 내가 아는 엄마 맞나, 문득 낯설어진다.


아빠 어깨를 주무르면 뼈가 만져진다. 살이 빠졌다. 등이 구부정해졌다. 예전의 아빠는 넓고 단단했다. 어릴 때 그 등에 업히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것 같았다 지금은 아니다. 마르고, 굽고, 작아졌다. 주무르는 내 손에 힘을 줄 수가 없다. 아플 것 같아서. 부서질 것 같아서.

족욕 물에 발을 담그신 부모님 옆에 앉아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나를 씻겨주셨다. 발을 닦아주시고, 머리를 말려주시고, 이불을 덮어주셨다. 지금은 내가 그걸 한다. 역할이 바뀌었다. 그게 자연스러운 건지, 슬픈 건지, 잘 모르겠다. 둘 다인 것 같다.

거울을 보면 나도 달라져 있다.

언제부턴가 이마에 잔주름이 보인다. 아직 깊지 않다, 연하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피부가 예전 같지 않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 그런데도 몸은 변한다. 밤을 새우면 이틀은 끌려가고, 조금만 무리하면 어깨가 결린다. 회복이 느려졌다. 스물다섯까지는 몰랐던 것들이다.

아, 나도 늙어가고 있구나. 부모님만 늙는 게 아니구나.

나도 같이 늙고 있구나. 그 사실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 선명하게 다가왔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생각한다.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실 거라는 것. 그게 자연의 순리라는 것. 머리로는 안다. 당연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 막힌다. 숨이 안 쉬어진다. 그래서 생각을 멈추려 하는데, 밤마다 다시 떠오른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엄마 아빠가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시간이 멈출 수는 없을까. 바보 같은 생각인 걸 안다. 그래도 한다. 차라리 부모님이 지금보다 젊어지면 좋겠다. 스무 살쯤, 아니 열아홉 살쯤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아직 시간이 많잖아. 아직 한참 남았잖아. 나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잖아.

그시절에는 해볼 수 없었던 부모님의 꿈도 이루는 과정을 다시 겪을 수 있을 테니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씁쓸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래서 저녁마다 부모님 방에 간다. 팩을 붙여드리고, 어깨를 주무르고, 족욕 물을 받아드린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서. 지금 이 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나이 든다는 것을 처음 느낀 건, 내가 늙어서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늙어가는 걸 보면서였다. 그리고 나도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흐르고, 부모님도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이, 어떤 날은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겁다.


나이 든다는 것.

우리는 이 말을 너무 쉽게 쓴다. "나이 들었나 봐",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 위로처럼, 자조처럼, 때로는 변명처럼. 하지만 정작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깊이 들여다본 적은 드물다. 나이 든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그것은 왜 이렇게 무거운 걸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노화는 세포의 문제다.

우리 몸의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염색체 끝의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죽는다. 이것이 노화의 시계다. 엘리자베스 블랙번은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녀에 따르면 만성 스트레스는 텔로미어의 단축을 가속화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세포 나이가 10년 이상 많을 수 있다.

이 연구를 읽었을 때, 부모님 생각이 났다. 나를 키우느라,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까. 엄마의 검버섯, 아빠의 굽은 등. 그것은 단순히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무게가 새겨진 것이다. 마음의 무게가 몸의 시간을 앞당긴 것이다.

뇌도 변한다. 20대 이후 뇌의 부피는 매년 조금씩 줄어든다. 특히 전두엽, 그중에서도 작업 기억과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이 먼저 쇠퇴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가 느려지고,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고, 멀티태스킹이 어려워진다. 부모님이 가끔 같은 말을 반복하시거나, 방금 한 얘기를 잊으실 때가 있다. 예전엔 답답했다. 왜 자꾸 그러시지. 이제는 그렇지 않다. 그게 뇌의 자연스러운 변화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가끔 그런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지만 신경과학은 다른 이야기도 들려준다. 뇌의 어떤 능력은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향상된다. '결정성 지능'이라 불리는 것,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능력. 패턴을 인식하고, 맥락을 파악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 젊은 뇌가 빠른 프로세서라면, 나이 든 뇌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다. 속도는 느려져도 깊이는 깊어진다.


부모님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가끔 한마디 하실 때, 그 말이 핵심을 찌른다. 내가 한참 고민하던 문제를, 부모님은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신다. 그게 경험의 힘이다. 깊이의 힘이다. 젊은 나는 아직 모르는, 살아봐야 아는 것들.


서른이 다가오자, 세상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서른인데 아직 결혼 안 했어?" "서른이면 이제 자리 잡아야지." "서른 넘으면 이직도 힘들어." 서른, 서른, 서른. 그 숫자가 마치 마감 기한처럼 다가왔다. 무엇의 마감인지도 모르면서, 뭔가를 이루어야 할 것 같았다. 결혼, 직장, 집, 저축. 체크리스트가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절반도 채우지 못한 것 같았다.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사회적 위치를 규정하는 좌표이고, 무엇을 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준표다. 서른에는 이 정도, 마흔에는 이 정도, 쉰에는 이 정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뒤처진 것이고, 늦은 것이고, 잘못된 것이다.

부모님 세대는 더했다. 부모님은 그 기준을 따라 살아오셨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아이를 낳고, 적당한 나이에 집을 마련하셨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제야 조금 안다. 나를 키우느라, 그 기준을 맞추느라,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셨는지.

마흔이 되면 또 다른 질문이 기다린다고 한다. 집은 있는가, 차는 있는가, 직위는 어디인가, 아이는 몇인가. 쉰이 되면 묻는다. 노후 준비는 되었는가, 은퇴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순이 되면 묻는다. 아직 쓸모가 있는가. 짐이 되지는 않는가. 나이가 들수록 질문은 무거워지고, 대답은 궁색해진다.


부모님도 그 질문들 앞에 서 계신다. 아직 쓸모가 있는가. 짐이 되지는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하실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싫다. 부모님이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게 싫다. 그래서 저녁마다 방에 간다. 당신들은 짐이 아니라고, 당신들이 있어서 내가 있다고, 말로는 못 하지만 행동으로 보여드리고 싶어서.

서양 철학은 오래전부터 시간과 죽음의 문제를 붙잡고 씨름해왔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죽음을 향한 존재(Sein zum Tode)'라고 불렀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이것은 비관적인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유한하고, 유한하기에 지금 이 순간이 의미를 갖는다. 영원히 산다면 오늘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매일 밤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고통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떠나실 것을 알기에, 지금 함께 있고 싶은 것이다. 영원히 계실 거라고 생각했다면, 저녁마다 부모님 방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 하지, 다음에 하지, 미뤘을 것이다. 유한하기 때문에 지금이 소중하다. 하이데거가 말한 것이 그런 뜻이었을까.


키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 나는 종종 생각한다. 부모님은 자기 자신으로 사셨을까. 아니면 사회의 기준에, 가족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당신들이 원하는 삶은 포기하셨을까. 물어본 적 없다. 물어보기가 무섭다. 대답을 들으면 가슴이 아플 것 같아서.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로 선고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 부모님은 나를 선택하셨다. 나를 낳고, 나를 키우고,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셨다. 그 선택의 무게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도 언젠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내 몸을, 내 삶을 내어줄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최근 한 인터뷰를 보면서 오래 생각에 잠겼다.

가수 이효리가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때 '대한민국 최고의 여가수'라 불렸다. 무대 위에서 빛나던 시절, 모든 카메라가 그녀를 향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이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요즘 친구들의 감각과 에너지를 따라갈 수 없다. 내가 그 자리를 꽉 쥐고 있으면 새로운 친구들이 나올 기회가 없지 않나. 내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나야 후배들이 더 빛날 수 있는 법이다."

이 말을 듣고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도 자리를 내어주고 계신 것이다. 한때 가장의 자리에서, 보호자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시던 자리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계신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돌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역할이 바뀌고 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부모님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효리는 또 이렇게 말했다. "박수 칠 때 떠나기보다는, 박수 소리가 작아질 때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게 후배들에게도 '저렇게 나이 들어도 멋지구나'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이다."

내려오는 길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 우리는 올라가는 법만 배웠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많이. 하지만 내려오는 법은 배운 적이 없다. 부모님이 지금 그 길을 보여주고 계신 건지도 모른다.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고 계신 건지도 모른다.

"누가 내 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겠지만, 나를 대신해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줄 후배가 나온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나는 내 나이에 맞는 자리를 새로 찾으면 된다."

자리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내어주는 것.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리를 찾는 것. 부모님에게 내가 그 '새로운 자리'가 될 수 있을까. 보호받는 자리에서 보호하는 자리로. 받는 자리에서 드리는 자리로. 그렇게 역할이 바뀌어도, 부모님은 여전히 부모님이다. 자리가 바뀌어도, 사랑은 바뀌지 않는다.

"옛날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지금은 실례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했던 방식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시대에 맞게 자리를 내어주고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공부다."

이것이 진정한 나이 듦의 지혜가 아닐까.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것. 새로운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자리를 새롭게 찾아가는 것.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다. 포기가 아니라 전환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나이 듦은 본래 다르게 해석되었다.

공자는 "서른에 이립(而立), 마흔에 불혹(不惑), 쉰에 지천명(知天命), 예순에 이순(耳順)"이라 했다. 서른에 뜻을 세우고, 마흔에 미혹되지 않고, 쉰에 하늘의 뜻을 알며, 예순에 귀가 순해진다. 나이 듦은 쇠퇴가 아니라 성숙이었다.

'이순(耳順)', 귀가 순해진다. 무슨 말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 부모님이 그런 경지에 계신 것 같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실수를 해도, 부모님은 받아주신다. 화를 내실 때도 있지만, 결국은 품어주신다. 그게 세월의 힘일까, 사랑의 힘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에릭 에릭슨은 인간 발달의 마지막 단계를 '자아 통합 대 절망'이라 불렀다. 노년기에 우리는 삶 전체를 돌아본다. 그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자아 통합'에 이른다. 후회와 원망에 사로잡히면 '절망'에 빠진다.


부모님은 어디에 계실까. 자아 통합의 길에 계실까, 절망의 그림자와 싸우고 계실까. 알 수 없다. 물어본 적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다. 다만 저녁마다 함께 있으면서, 조금이라도 자아 통합 쪽으로 가실 수 있도록, 당신들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것을 느끼실 수 있도록,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에릭슨은 자아 통합에 이른 사람들에게 '생성감(generativity)'이 있다고 했다. 다음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욕구. 부모님은 나를 남기셨다. 내가 부모님의 유산이다. 집도, 재산도 아닌, 내가. 그 사실이 무겁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칼 융은 인생의 후반부를 '오후의 과제'라고 불렀다.

오전에는 사회에 적응하고, 자아를 확립하고, 바깥세계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이 과제다. 하지만 오후에는 방향이 바뀐다. 바깥에서 안으로, 확장에서 통합으로, 획득에서 의미로.

부모님은 오후의 한가운데 계신다. 더 이상 바깥세계에서 성취를 이루실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안으로 들어가실 때다.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찾고, 평화를 찾으실 때다. 내가 도울 수 있을까. 저녁마다 함께 있는 것이, 팩을 붙여드리고 어깨를 주무르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그러니까 나이 듦은 단순한 쇠퇴가 아니다. 잘 나이 든다는 것은 새로운 과제를 받아들이고,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님이 그 과정에 계신다면, 나는 그 옆에서 함께 걷고 싶다. 손을 잡고, 발을 씻겨드리고, 얼굴을 들여다보며.



아흔셋, 내 등에 업혔던 가장 가벼운 세계

나는 가끔 할머니를 떠올린다.

사람의 생애는 둥근 원을 그리며 흐른다고들 한다. 가장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 가장 단단한 어른의 시기를 지나, 다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아흔셋의 할머니와 한집에 살며 그 곁을 직접 지켰던 시간은, 내게 그 둥근 순환의 신비와 서글픔을 동시에 가르쳐준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다. 학교 문턱조차 밟아본 적이 없었다.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을 '옌즉에' 떠나보낸 뒤, 할머니는 과연 무슨 낙으로 그 긴 세월을 견디셨을까. 역사책에나 나오는 전쟁까지 온몸으로 겪어냈을 연세였지만, 나는 할머니의 젊은 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이 차이가 컸던 탓에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아주 어렸을 때조차 이미 깊은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빌라였던 우리 집은 엘리베이터 없이 계단뿐이었다.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더 젊으셨을 때는 그저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만으로도 산책을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의 무릎은 힘을 잃었고, 결국 산책을 나가려면 할머니를 등에 업고 그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내 등에 닿았던 할머니의 무게는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 목이 메곤 했다. 93년의 세월이 이토록 가벼운 몸에 담겨 있었다니.

할머니는 표현이 서툴렀지만, 주머니 속에는 늘 나를 위한 비밀이 있었다. 엄마 몰래 쥐여주시던 달콤한 간식들. 할머니의 주름진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네던 그 사소한 것들 속에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있었다.


마지막 반년, 할머니의 몸은 집에서 모실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나빠지셨다. 서울에 원룸을 구하러 다니며 내 삶을 준비하던 날, 할머니가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밥 한 끼 챙겨 먹지 못한 채 달려간 병원.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이 나뿐이었기에, 나는 부모님 대신 응급차에 몸을 싣고 의료원에서 대학병원으로 할머니를 옮겼다.

차가운 공기와 낯선 의료진들 때문이었을까. 공포에 질린 할머니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셨다. 평소 치매 기운 한 번 없으셨던 분이 갑자기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기 시작하셨다. 의사는 연세 때문에 수술도 소용없다며 요양병원을 권했다. 단 며칠 사이에 할머니는 몰라보게 수척해지셨다. 보호자조차 들어갈 수 없는 차가운 문밖에서 나는 발만 동동 굴렀다. 할머니의 저항이 너무 심해 포박해야 한다는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 했을 때, 그 떨리던 손끝과 손을 잡아드리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무력감이 여전히 가슴에 박혀있다.


그 안개 같은 기억 속에서도 할머니가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이름은 오직 나와 엄마뿐이었다. 온 세상이 낯설어져도 우리만은 할머니의 유일한 세계였다.

다행히 요양병원이 집과 가까워 매일같이 면회를 갔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내가 타지역으로 일을 나갔던 날 할머니는 마지막 숨을 거두셨다. 엄마와 나는 그 마지막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았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며칠 전, 병원 침대에 누워 내 손을 잡고 귤 먹으라며 작은 손짓이 그 짧은 한마디에 당신의 모든 진심을 담아 내게 건네주셨음을 믿는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무언가를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복잡한 것들을 하나둘 걷어내고 가장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만 남기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그 길을 따라 조금씩 작아지고 있을 엄마를 생각한다. 직접 씻기고 등에 업어 계단을 내려가야 했던 할머니처럼, 엄마도 그렇게 가장 본질적인 사랑만 남기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솔직히 말하면 무섭다. 할머니를 보내며 겪었던 그 고단함과 슬픔을, 이제는 엄마를 통해 다시 마주해야 할 날이 올까 봐 겁이 난다. 내가 다시 그 무게를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지, 그때의 나처럼 단단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하지만 할머니가 주머니 속에 숨겨두었던 그 작은 사탕 하나가 내 유년의 위로였듯, 나 역시 무서움을 뒤로하고 엄마의 시간을 지키는 가장 큰 아이가 되어보려 한다.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주름, 거칠어진 손, 굽어진 등. 그것은 나를 키우느라,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을 덜어내며 살아온 흔적이다. 엄마는 늘 마지막에 먹었다. 좋은 건 아이들에게 먼저 주고, 본인은 남은 것으로 때웠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게 엄마의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가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매끼, 평생.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받기만 했다. 당연하게 받기만 했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서른이 되었으니까. 이제는 나도 내어줄 수 있어야 하니까.

마르틴 부버는 인간관계를 '나 그것(I-It)'과 '나 너(I-Thou)'로 나누었다. '나-그것' 관계에서 타인은 도구다.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로 평가된다. '나-너' 관계에서 타인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다. 쓸모와 상관없이, 조건 없이.

부모님은 더 이상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실 수 없다. 예전처럼 돈을 벌어오시거나, 밥을 차려주시거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없다. 오히려 내가 해드려야 할 것이 늘어났다. '나-그것'의 논리로 보면, 부모님의 가치는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부모님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무엇을 해주셔서가 아니라, 그냥 계시는 것만으로. 저녁에 부모님 방에 가서 얼굴을 보는 것, 그것만으로 나는 안심이 된다. 아직 계시구나. 아직 함께할 수 있구나. 그 존재 자체가 선물이다.


한국 사회는 점점 '나-그것'의 세계로 기울고 있다. 사람의 가치를 쓸모로 측정한다. 노인이 홀대받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하지만 부버가 말했듯, '나-너' 관계에서만 인간은 진정으로 인간이 된다. 쓸모없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쓸모와 상관없이 사랑하는 법을.


물론, 나이 듦의 무게를 낭만화하고 싶지는 않다.


밤마다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부모님이 19살이 됐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되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슬프다. 언젠가 정말로 그날이 오면, 나는 버틸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래서 나는 나이 듦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거짓이다. 나이 듦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다. 지혜롭기도 하고 어리석기도 하다. 평온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그것이 삶이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이 듦의 무게를 견디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발견한 진실을 썼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묻지 말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물으라."


지금 삶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부모님 곁에 있으라고. 함께 늙어가라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언젠가 떠나실 날이 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후회 없이 살라고.


오늘도 저녁이 되면 부모님 방에 갈 것이다.

족욕 물을 받고, 엄마 얼굴에 팩을 붙이고, 아빠 어깨를 주무를 것이다. 엄마의 검버섯을, 아빠의 굽은 등을, 또 볼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질 것이다. 밤에 잠들기 전, 또 생각할 것이다. 언젠가 오실 그 날을.

하지만 내일도 갈 것이다. 모레도 갈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계속 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면, 남은 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기 때문에.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던 아버지의 어깨가 작아 보인다는 것을.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부모님의 시간은 이제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아이였던 내가 부모의 보살핌 속에 어른이 되었듯, 이제는 '어른 아이'가 되어가는 부모를 내가 품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의 보호자. 그것이 지금 내 역할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현실은 문학적 감성만큼 아름답지만은 않다. 우리 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의 삶'과 '자아실현'을 소중히 여기며 자라왔다. 내 커리어를 쌓고, 취향을 가꾸고, 간신히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아가기에도 벅찬 세상이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미래는 불안하고, 나 하나 살기도 힘들다. 그런 우리에게 부모 부양이라는 짐은 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침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해지자. 나도 그런 순간이 있다.


부모를 보살핀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수고를 넘어선다. 그것은 내가 믿고 의지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는 일이다. 든든하고 강했던 부모님이 약해지고, 작아지고, 때로는 아이처럼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것은 가혹하다. 외면하고 싶을 때도 있다.

"요즘 젊은 애들은 이기적이라 부모를 안 모신다"는 말을 듣는다. 그 말은 틀렸다. 우리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현실적인 한계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은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시간을 내도 돈이 없어서, 모든 것을 쏟아도 부족할 것 같아서. 그래서 막막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부모님이 다시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에게 '완전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연이 주는 배려. 갑자기 떠나시면 준비할 틈도 없이 무너질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작아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조금씩 마음을 준비할 수 있다. 아프지만, 필요한 과정인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든든한 버팀목은 아닐지라도, 이제는 내가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부모라는 그늘을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계신다. 마지막 가르침처럼.

나의 삶도 중요하다. 그것은 사실이다.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나를 있게 한 그들의 저무는 시간도 소중하다. 이 두 개의 평행선 사이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희생'이 아니라 '공존'일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헌신하라는 것이 아니다. 직접 곁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그들의 작아진 손을 잡아주는 것. 저녁에 잠깐이라도 얼굴을 보고, 전화 한 통이라도 하고, 함께 밥 한 끼라도 먹는 것. 그것이 공존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른다. 그리고 거꾸로도 흐른다.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아이가 되어갈 것이다. 내 어깨도 작아지고, 내 등도 굽고, 나도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그때 누군가 내 곁에 있어줄까. 내 손을 잡아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내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 시간은, 어쩌면 내 미래에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랑받았다고. 이렇게 사랑했다고. 그 기억이 나를 버텨주지 않을까.

나이 든다는 것의 무게. 그것은 분명 무겁다. 부모님의 노화를 지켜보는 것, 나도 함께 늙어가는 것,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 그 모든 것이 무겁다.

하지만 무거운 것은 나쁜 것만이 아니다. 가벼운 것은 바람에 날아가고, 무거운 것은 땅에 뿌리 내린다. 이 무게가 나를 붙잡고 있다. 부모님 곁에 붙잡고 있다. 그래서 저녁마다 갈 수 있다. 그래서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말로는 못 해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다.

엄마 손등의 주름을, 아빠 어깨의 뼈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내 손에도 언젠가 주름이 생기고, 내 어깨도 언젠가 굽을 것이다. 그때 나는 부모님을 떠올릴 것이다. 당신들이 어떻게 나이 드셨는지, 어떻게 자리를 내어주셨는지,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어떻게 다시 아이가 되셨는지, 나는 어떻게 당신들의 보호자가 되었는지.


그것이 유산이다. 집도 재산도 아닌, 그 기억이. 그 사랑의 방식이.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붙잡았던 그 손의 온기가. 나는 그것을 물려받고, 언젠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이렇게 사랑하는 거라고. 이렇게 함께 늙어가는 거라고. 이렇게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거라고.


박수 소리가 작아져도 괜찮다. 무대 뒤에서 박수 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부모님이 먼저 보여주셨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다. 지금은 아직, 받으면서 동시에 드리는 중이다.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중이다. 저녁마다 부모님 방에 가서, 나이 드는 법을 배우고, 동시에 사랑하는 법을 보여드리는 중이다.

오늘도 해가 진다.


부모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나는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간다. 족욕 물을 받으러. 팩을 붙여드리러. 어깨를 주무르러. 그리고 얼굴을 들여다보러.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간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함께해서 감사하다고. 내일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모레도, 그 다음 날도. 할 수 있는 한, 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말로는 못 하지만, 손끝으로 전한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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