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알려주는 것들

by 슈펭 Super Peng


어느 순간부터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는 몰랐다. 여름이 오면 덥고, 겨울이 오면 추웠다. 그뿐이었다. 계절은 그냥 배경이었다. 학교 가는 길의 풍경, 입는 옷의 두께, 그 정도. 계절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서른이 가까워지면서 계절이 다르게 느껴진다. 봄이 오면 설레기만 했는데, 이제는 불안도 함께 온다. 또 한 해가 시작되는구나,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가을이 오면 쓸쓸하기만 했는데, 이제는 안도도 함께 온다. 올해도 여기까지 왔구나, 그래도 버텼구나. 계절이 감정을 데리고 온다. 예전에는 없던 감정들을.

창밖을 본다. 나뭇가지에 연두색 잎이 돋아 있다. 며칠 전까지 앙상했는데. 자연은 묻지 않는다. 준비됐느냐고, 허락하느냐고. 그냥 온다. 그냥 바뀐다. 그 무심함이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위로가 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했다. "만물은 흐른다(Panta Rhei)."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흐르고, 나도 변하기 때문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안다. 계절이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작년 봄과 올해 봄은 같지 않다. 같은 벚꽃이 피고, 같은 바람이 불지만, 그것을 보는 내가 다르다. 작년의 나는 스물아홉이었고, 올해의 나는 서른이다. 숫자 하나의 차이지만, 그 사이에 수많은 밤이 있었다. 수많은 생각이, 수많은 감정이, 수많은 변화가.

계절은 순환하지만, 나는 순환하지 않는다. 봄은 다시 오지만, 스물아홉의 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계절은 잔인하다. 똑같은 얼굴로 돌아와서,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거울보다 정확하게. 달력보다 선명하게.


한국에는 24절기가 있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이름만 들어도 계절의 결이 느껴진다. 경칩(驚蟄), 겨울잠 자던 벌레가 놀라 깨어난다. 곡우(穀雨), 곡식을 기르는 비가 내린다. 선조들은 계절을 24개의 언어로 나누어 불렀다. 그만큼 자연을 가까이 느꼈다는 뜻이다.

할머니 세대는 절기에 맞춰 살았다. 입춘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써서 문에 붙이고, 동지에는 팥죽을 쑤고, 삼복에는 삼계탕을 끓였다. 계절이 달력이었고, 계절이 생활이었다. 자연의 리듬에 몸을 맞추는 삶.

지금 나는 어떤가. 계절이 바뀌어도 사무실은 같은 온도다. 여름에도 에어컨, 겨울에도 난방. 24절기는커녕, 지금이 몇 월인지도 가끔 헷갈린다. 달력을 봐야 안다. 창밖을 봐야 안다. 자연과 단절된 삶. 계절을 잃어버린 삶.

그래서일까. 가끔 계절이 바뀔 때 이상하게 허전하다. 몸은 인공적인 환경에 있는데, 마음은 뭔가를 그리워한다. 흙 냄새, 풀 냄새, 빗소리, 바람 소리.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는데, 왜 이런 것들이 그리울까. 아마 몸이 기억하는 것이리라. 수만 년 동안 자연 속에서 살았던 인류의 기억. DNA에 새겨진 계절의 리듬.


심리학에서는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를 말한다.

겨울이 되면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햇빛이 줄어들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고, 멜라토닌 분비는 증가한다. 뇌가 계절에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자연에 연결되어 있다.

나도 겨울이 힘들다. 해가 짧아지면 마음도 짧아지는 것 같다. 뭘 해도 의욕이 없고, 이불 밖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게으른 건지, 우울한 건지, 그냥 겨울인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아마 다 섞여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해가 길어지면 마음도 늘어난다. 창문을 열고 싶어진다. 밖에 나가고 싶어진다. 몸이 먼저 안다. 뇌가 먼저 반응한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이제 움직여도 된다고.

그러니까 겨울의 무기력함은 결함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동물들도 겨울잠을 잔다. 나무도 잎을 떨군다. 쉬어가는 것이다.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겨울에 무기력한 건, 봄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노자는 말했다. "도법자연(道法自然)."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자연이 가장 큰 스승이다. 자연은 억지로 하지 않는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잎이 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계획하지 않아도. 그냥 때가 되면 그렇게 된다.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계획하고, 통제하고, 조절하려 한다. 겨울에도 일하고, 여름에도 쉬지 않는다. 밤에도 불을 켜고, 낮에도 커튼을 친다. 자연의 리듬을 거스르며 산다. 그리고 지친다.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른 채.

장자의 소요유(逍遙遊)가 떠오른다. 자유롭게 노닐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계절이 그것을 보여준다. 봄은 여름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여름이 된다. 가을은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냥 때가 되면 잎을 놓는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때가 되면 피고, 때가 되면 지고, 때가 되면 쉬고, 때가 되면 다시 시작하는. 계절처럼. 자연처럼. 애쓰지 않고도 흘러가는.



니체는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를 말했다.

모든 것은 영원히 반복된다. 지금 이 순간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면, 당신은 이 삶을 다시 살겠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처음 이 개념을 접했을 때 무서웠다. 같은 실수를, 같은 고통을, 영원히 반복한다니. 하지만 계절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반복은 지옥이 아닐 수도 있다. 기회일 수도 있다.

봄은 매년 온다. 작년 봄에 하지 못한 것을, 올해 봄에 할 수 있다. 작년 봄에 놓친 것을, 올해 봄에 붙잡을 수 있다. 계절은 반복되면서 기회를 준다. 다시 해볼 기회. 다르게 해볼 기회.

물론 똑같은 봄은 없다. 헤라클레이토스 말대로,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하지만 비슷한 봄은 온다. 비슷한 기회는 온다. 그것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한국의 봄은 유난히 짧다.

겨울이 끝나자마자 여름이 온다. 봄옷을 꺼내면 이미 더워지고 있다. 벚꽃은 일주일 만에 진다. 아름다운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일본에는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라는 개념이 있다. 사물의 슬픔. 아름다운 것이 사라지는 것에서 느끼는 애수. 벚꽃이 질 때, 단풍이 떨어질 때, 우리가 느끼는 그 먹먹함. 그것이 모노노아와레다.

한국에도 비슷한 정서가 있다. 이름은 없지만, 누구나 안다. 진달래가 필 때, 코스모스가 흔들릴 때, 첫눈이 내릴 때. 가슴 한쪽이 저려온다. 아름다워서. 그리고 곧 사라질 거라서.

어쩌면 우리가 계절을 사랑하는 이유가 그것인지 모른다. 계절은 지나간다. 붙잡을 수 없다. 그 덧없음이 우리 인생을 닮았다. 계절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본다. 피고 지는 것. 오고 가는 것.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



타로 카드에 '죽음(Death)'이 있다.

해골이 말을 타고 있는 그림. 처음 보면 무섭다. 이 카드가 나오면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타로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죽음 카드는 끝이 아니라 변화라고. 낡은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는 의미라고.

탑(Tower) 카드도 그렇다. 벼락 맞아 무너지는 탑. 사람들이 떨어지는 그림. 재앙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해체와 재건의 의미다. 억지로 붙잡고 있던 것들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이 세워진다.

계절도 같다. 가을은 죽음 카드다. 모든 것이 시든다. 잎이 떨어지고, 꽃이 지고, 색이 바랜다. 겨울은 탑 카드다. 모든 것이 멈춘다. 얼어붙고, 고요해지고, 생명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다음에 봄이 온다는 것을. 죽음 다음에 부활이, 붕괴 다음에 재건이 온다는 것을. 타로가 알려주는 것, 계절이 알려주는 것. 결국 같은 이야기다. 끝은 끝이 아니다. 끝은 다른 시작이다.

떨어지는 것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잎이 떨어져야 새 잎이 돋는다. 무너지는 것들을 붙잡지 마라. 탑이 무너져야 새 탑이 세워진다. 계절은 매년 그것을 보여준다. 죽음과 부활을. 끝과 시작을. 떨어짐과 피어남을.



서른의 나는 어떤 계절에 있는 걸까.

아직 봄일까. 이제 막 시작하는 중일까. 아니면 벌써 여름일까. 한창 달려야 할 때일까. 모르겠다. 계절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봄인 듯 여름인 듯, 여름인 듯 가을인 듯. 그 사이 어딘가.

확실한 건, 나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멈춰 있는 것 같아도, 흐르고 있다. 계절이 바뀌듯, 나도 바뀌고 있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다르다. 내년의 나는 또 다를 것이다.

그 사실이 무섭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한다. 무섭다, 시간이 지나가니까. 젊음이 지나가니까. 기회가 지나가니까. 위안이 된다, 고통도 지나가니까. 힘든 것도 지나가니까. 겨울도 지나가니까.

한국 사회는 유독 봄과 여름을 강요한다. 항상 피어 있으라고, 항상 달리라고, 항상 성장하라고. 가을과 겨울은 허락되지 않는다. 멈추면 뒤처지고, 쉬면 낙오된다. 하지만 자연을 보라. 나무는 일 년 내내 잎을 달고 있지 않는다. 떨어뜨려야 할 때 떨어뜨린다. 쉬어야 할 때 쉰다. 그래야 다음 봄에 다시 피어날 수 있다.



알베르 카뮈는 썼다. "한겨울에 나는 마침내 알았다. 내 안에 꺾이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울컥했다. 겨울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 같았다.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카뮈의 말이 맞았다. 내 안에도 여름이 있었다. 꺾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계절은 바깥에만 있지 않다. 안에도 있다. 마음에도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온다. 외부의 계절과 내부의 계절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바깥은 봄인데 마음은 겨울일 때가 있다. 바깥은 겨울인데 마음은 봄일 때도 있다.

중요한 건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봄을 기다리는 것. 계절은 반드시 바뀐다. 마음의 계절도 반드시 바뀐다. 영원한 겨울은 없다.



릴케는 말했다. "봄이 돌아오려면 겨울을 견뎌야 한다."

견딘다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겨울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겨울 안에 머무는 것. 추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위를 느끼며 기다리는 것.

우리는 너무 자주 겨울에서 도망치려 한다. 힘들면 안 되고, 슬프면 안 되고,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겨울 없이 봄은 오지 않는다. 죽음 없이 생명은 없다. 잎이 지지 않으면 새 잎이 돋지 않는다. 타로의 죽음 카드가 바로 그것이다. 두려워 보이지만, 실은 변화의 문이다.

지금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과정이다. 봄을 향해 가는 과정. 필요한 과정. 나무가 겨울에 뿌리를 내리듯, 우리도 힘든 시간에 깊어진다. 탑이 무너진 자리에 더 단단한 탑이 세워지듯, 우리도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다.



계절이 알려주는 것들.

첫째, 모든 것은 지나간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붙잡으려 하지 마라. 흘려보내라.

둘째, 끝은 시작이다. 겨울 다음에 봄이 온다. 죽음 카드 다음에 새로운 시작이 온다. 무너진 탑 위에 새 탑이 세워진다.

셋째, 때가 있다. 봄에 피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쉰다. 서두르지 마라. 때를 기다려라.

넷째, 나도 자연이다. 계절의 일부다. 자연의 리듬을 거스르지 마라.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섯째,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계절은 돌아오지만, 이 봄은 이번뿐이다. 지금 여기를 살아라.



창밖을 본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햇살이 비친다. 그림자가 움직인다. 계절이 말을 건다. 나는 듣는다.

봄이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와 있다. 연두색 잎이, 따뜻한 바람이, 길어진 해가. 계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아도 온다. 허락하지 않아도 바뀐다.

나도 바뀔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절과 함께, 시간과 함께. 서른의 봄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년에는 서른한 살의 봄이 올 것이다. 또 다른 봄이.

그 사실이 슬프지만, 슬프기만 하지는 않다. 계절이 알려주었다. 지나간다는 것은, 새로운 것이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끝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죽음 카드가 뽑혔다면, 변화가 오고 있다는 뜻이라고.



오늘, 산책을 나가야겠다.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러. 바람을 맞고, 햇살을 쬐고, 흙 냄새를 맡으러. 24절기는 몰라도, 오늘이 어떤 날인지는 알 수 있도록. 몸으로 기억하러.

계절은 묻지 않는다. 그냥 온다. 그냥 간다. 그 무심함 속에 깊은 가르침이 있다.

받아들여라. 흘려보내라. 기다려라. 다시 시작하라.

계절처럼. 자연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마라. 떨어진 자리에서 새싹이 돋는다.



계절이 왔다.

창문을 연다.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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