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 익는 데
온 볕이 든다.
복숭아 하나 붉어지려
햇살만 드는가.
이슬이 적시고
바람이 쓸고
벌레 우는 밤이 스미어
비로소 단내가 오른다.
나도 그리 익었다.
이름 모를 손이 있었다.
무릎 닦아주던 손,
국 떠주던 손,
머리 쓸던 손.
손마다 결이 달라
나는 여러 결로 자랐다.
기러기 홀로 날지 않는다.
앞선 날개 가른 바람을
뒤따르는 날개 딛고 오르니,
하늘 가는 길도
품앗이더라.
스치고
스치고
스쳐서 간 것들.
처마 밑 비 피하던 어깨,
건널목 잡아주던 손목,
말없이 건넨 우산 한 자루.
머물지 않아 이름 없고
이름 없어 빚질 수 없는 것.
꽃 피자 벌이 오고
벌 가자 열매 드니,
오고 감이 모두
서로의 철이더라.
내 안의 온기,
내가 지핀 것 아니다.
스친 손마다 떨군 불씨
주워 모아 겨우 피운 촛불,
나는 그 빚으로 서 있다.
이제 나도 스쳐야 한다.
누군가의 처마 되어
누군가의 바람 되어
머물지 않고
이름 남기지 않고.
불씨 하나
슬며시 놓고 가야 한다.
받은 줄 모르게,
준 줄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