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스미는 것들

by 슈펭 Super Peng


봄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그저 어느 날 문틈 사이로

스며들어 있을 뿐이다

너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랬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네가 쓰던 말투가

내 혀 끝에 배어 있었고

네가 좋아하던 음악이

내 침묵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

스미는 것들은

소리가 없다

빗물이 콘크리트에 스며들 때

모래가 신발 안으로 들어올 때

나이가 얼굴에 앉을 때

그것들은 모두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나는 한참 후에야 안다

이미 물든 다음에야

어머니의 말버릇이 내 입에서 나오는 아침

거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아, 이렇게

사람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구나

천천히

너무 천천히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래서 사랑은 항상

이미 시작된 뒤에야 이름을 얻는다

슬픔도 그렇다

어느 순간 내가 슬픈 게 아니라

내가 슬픔이 되어 있다

기쁨도 그렇다

찾아오는 게 아니라

어느새 내가 그 안에 있다

천천히 스미는 것들이

결국 나를 만든다

두드리지 않고

허락받지 않고

그러나 가장 깊이

봄처럼

너처럼




















창작 의도 노트:

이 시는 ‘스미다’라는 감각적 동사 하나를 중심에 두고, 사랑·슬픔·기쁨·시간·관계 같은 추상적 경험들이 모두 의지와 무관하게 천천히 침투하는 방식으로 온다는 통찰했습니다

첫째로 ‘봄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첫 행이 주제를 직접 선언하되 이미지로 열어 몰입을 유도하고, 둘째로 콘크리트·모래·신발 같은 일상적 감각어를 통해 관념을 구체화했으며, 셋째로 ‘어머니의 말버릇’ 장면처럼 독자 자신의 경험을 환기시키는 보편적 디테일을 배치했습니다. 마지막 연에서 ‘봄처럼 / 너처럼’으로 수미상관을 완성하면서 감정적 여운이 남도록 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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