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시가 되어야 했다
말은 태생적으로 가볍다
혀끝을 떠나는 순간 존재의 무게를 잃고
허공의 소음으로 산화(酸化)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하여 나는 발설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가장 귀한 진심은 음성으로 번역되는 찰나
오역(誤譯)된 비명이 되어 흩어지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차마 수면 위로 올리지 못한
문장들의 공동묘지가 있다
일상의 안부라는 얄팍한 피막(피막) 아래
"괜찮다"는 형용사로 봉인된 수많은 주어들
그 이면의 소용돌이를 나는 생의 앙금이라 부른다
인문(人文)이란 결국 잊혀가는 것들의 잔상을
문장이라는 닻으로 붙잡아두는 고독한 항해 아니던가
시간의 파도에 마모되어 형체조차 흐릿해진 기억들
말로는 도무지 형상화할 수 없는 그 눅눅한 기척들이
행간마다 숨어들어 지독한 체취를 풍긴다
고백의 유효기간이란 곧 망각의 시작일 터
삭히고 삭혀 부패의 임계점을 넘긴 감정들은
비로소 발효된 시의 눈이 되어 피어난다
이것은 언어의 죽음 끝에서 얻어낸 사리(舍利)이자
나의 생을 증명하는 유일한 비문(碑文)이다
이제 나는 설명하기를 포기하고
다만 행간에 고인 농익은 어둠을 통째로 건넨다
나의 침묵이 당신의 상처와 제 몸을 섞을 때
비로소 언어의 가사(假死) 상태를 뚫고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시로 부활하리니
우리가 나눈 허드레 날씨 뒤편에
지층처럼 쌓여온 그 축축한 진실을,
이제 당신이라는 심연(深淵)이
나라는 심연을 목격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