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제 몸을 거두어갈 때, 진흙은 비로소 혈관을 얻는다.
밀물에 가려졌던 검은 살갗 위로
떠난 것들이 남기고 간 비릿한 이정표들이
구불구불한 흉터처럼 돋아난다.
파도는 수만 번 같은 문장을 썼다가 지우지만
바닥에 남은 것은 젖은 침묵뿐이다.
그것은 도망친 물의 자국인가,
아니면 차마 따라가지 못한 땅의 울음인가.
텅 빈 갯골마다 차오르는 것은 이제 소금기가 아니라
햇살의 날카로운 파편들,
비어 있음으로써 가장 뜨겁게 흐르는
기억의 지류(支流)들이 갯벌을 움켜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