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열정의 기록

: 옅은 존재감의 서사

by 슈펭 Super Peng



나는 요즘 여러 모임에 참여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지식과 인문학을 다시 배운다. 그 모임들에서 나는 늘 강의실 가장 앞줄에 앉았다. 강사님께 질문을 쏟아내고, 강의 시간보다 훨씬 먼저 와서 배울 내용을 종이에 꼼꼼히 필기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다. 강사님이 발표할 사람이 없냐고 물을 때면, 망설임 없이 손을 들곤 했다. 그 누구보다 열정적인 학생, 그것이 겉으로 비치는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강의실 가장 앞줄에 앉아 빛나던 그 열정적인 모습은 어쩌면 인정받고 싶고, 관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고 싶은 나의 간절한 외침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생각하는 나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열심히 참여하고 성실하게 임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른 이들은 앞자리가 부담스럽다며 뒷줄로 물러났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가장 앞에서 배움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 열정적인 모습 뒤편에는 늘 외로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북적이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고, 마음을 열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들 속에 온전히 섞이지 못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 '섞이려' 노력하기보다, 내 본연의 모습을 '지우려' 애썼기에 더욱 외로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대화는 이내 끊겼고, 내가 다가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관계의 불씨를 지펴야 하는 몫은 언제나 나의 것이었고, 그 필연적인 피로감은 마치 서서히 스며드는 독처럼 나를 잠식해 들어갔다.





겉으로는 매사에 잘 참여하고 모범적인 사람이었다. 해야 할 일은 빠짐없이 해냈고, 약속을 어기는 법도 없었다. 모임에서도 튀지 않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딱 거기까지였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어딘가 결정적으로 부족한 느낌이 나를 맴돌았다. 그 미묘한 부족함은 타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 안에 자리한 불안정감에서 피어난 의심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선을 쉽게 넘나들며 깊은 관계로 나아갔지만, 나는 늘 그 선 밖에 머물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것은 단순히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 어느 무리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을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에 소속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지닌 사회적 동물이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서 보듯,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면 우리는 소속감과 사랑의 욕구를 갈구한다. 그들의 일원이 되어 함께 숨 쉬고 싶었던 깊은 바람이 내 안에는 늘 존재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의 짝을 찾아냈다. 연인이 아니더라도, 유독 함께 붙어 다니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는 단짝들. 그들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활기찼고, 함께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은 반짝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스몰톡 이상의 관계로는 나아가지 못했다. 겉으로는 친한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저 상황 때문에 잠시 모인 이들에 불과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찬란하게 펼쳐질 때, 나는 그저 쪽수를 채우는 사람에 불과했다. 존재는 했으되, 그 존재가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숫자를 위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나는 늘 주인공이 아닌 느낌이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빛나는데, 나는 늘 어둠 속에 가려진 배경 인물 같았다. 내가 어떤 말을 하든, 어떤 표정을 짓든, 아무도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지지 않는 듯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나는 그들 사이에 존재했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내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처럼, 내 존재감은 늘 희미했다. 그들의 빛을 받아 존재했지만, 정작 나 자신의 빛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그들의 뒤를 조용히 따르는 투명한 형체에 불과했다.


이러한 외로움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노력하고 애써봐도, 돌아오는 것은 번번이 차가운 시선과 무관심, 혹은 예기치 못한 비수 같은 말들이었다. 내가 건넨 손은 허공에 맴돌았고, 진심은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되었다. 관계의 깊이는 더 멀어지는 듯했고, 남는 것은 결국 상처뿐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움과 원망이 공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관계에 미련을 두는 이 마음은 무엇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처와 집착'의 역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불안정한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상처를 준 그 사람에게서라도 인정과 연결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갈망이 역설적으로 발현된 것일 수 있다. 익숙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두려워하는 인간 본연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 혹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서 어떤 희망을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단지 익숙함이라는 안정감에 갇힌 걸까? 이 복잡한 감정의 얽힘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책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말로는 고독이 있어야 성공한다고 했다. 고독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몰입하며,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그들의 고독은 목표를 향한 '선택적 고독'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이 외로움은 평생 나를 따라다녔던 '비자발적인 고독'이다. 과연 지금의 이 고독이 정말 성공의 신호일까?

평생 외로웠던 나는 그 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이 비자발적인 고독이야말로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세상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외로움이 나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삶이 던지는 이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망연할 때가 많았다. 알베르 카뮈가 이야기했듯, 인간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존재다. 나의 이 고독 또한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의 일부일까.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조금씩 들여다보려 한다. 어쩌면 나처럼 '물과 기름' 같다고 느끼는 다른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 건강한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의 빛을 찾고, 내 이야기의 진정한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작지만 분명한 기대를 가져본다. 어쩌면 이 고독의 시간이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만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의 서막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어본다.


이 고독의 시간이 바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나만의 빛을 찾아가는 여정의 진정한 서막임을 이제는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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