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우리 지금 살아있잖아

이런 저런 복병이 있어도 결국 굴러가는 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by 강수아
언니랑 이번 달에 여행 갈 생각 없어?



엄마한테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직장에 다니고 있는 언니의 휴가 일정이 나왔다면서, 2주 뒤에 같이 여행 갈 생각이 있냐고 묻는 전화였다.

갑작스럽긴 했어도 나로서는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면 아직 여행의 행선지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먼 곳을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휴가 일정인지라 가까운 곳을 탐색하다가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었던 일본, 그리고 내겐 생소한 나라였던 중국으로 후보가 좁혀졌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상하이에 여행을 다녀왔던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생각보다 상하이가 너무 좋았다며, 꼭 한 번 가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나. 어디든 좋다는 마음가짐이었던 나는, 친구 말에 그렇게 속전속결로 상하이로 가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한동안 중국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어 여행 준비도 쉽게만 생각했는데 중국이라는 나라의 시스템은 또 왜 이리 복잡한지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아 애를 먹었다. 그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준비하다보니 어느새 다가온 출국날, 일찍 인천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 수속도 마치고 여유롭게 비행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여행에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언니가 비행기 탑승 직전에 공항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리게 된 거다.


언니도 나도 멘탈이 나갔지만 이럴수록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중국을 가는 비행기 내내 가능한 한 모든 대안을 활용해 상황을 해결하려 애썼다. 그렇게 공항까지 도착해서 중국인 직원들에게 갖은 하소연을 하고 애를 썼지만.. 우선 지금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 거의 먹은 것도 없이 하루 종일 멘탈만 무너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던 언니와 나는 몇 시간 동안 씨름하던 푸동공항에서 나와 우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향하는 와중에도 대안을 생각하며 이미 물러터지다 못해 흘러내리는 멘탈을 부여잡고, 창 밖에 보이는 풍경들에 집중하지 못한 채로 택시에서의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어찌저찌 간신히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피곤함을 견디지 못하고 잠시 누워있기를 택했다.


그러나 어떡하겠나. 휴대폰 잃어버린 건 잃어버린 거고, 일어나서 밥이라도 먹어야지 하는 생각에 비척비척 숙소 앞으로 걸어 나온 우리를 반겨준 건..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들, 붉은 색과 금색 조명이 쉴 틈 없이 빛을 내고 있는 길게 펼쳐진 난징동루의 번화가, 그 속을 누비고 있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 흐르는 강물 위에 반사된 푸동의 마천루.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거리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관광객과 현지인과 숱하게 들려오는 중국어는, 마치 내게 넌 지금 상하이에 왔다는 걸 알려주는 듯 눈 앞에 어지럽게 편재되어 마음을 점차 들뜨게 만들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이륙 직전에 언니의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그런 상황에서 비행기는 출발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승무원 분들께 도움을 요청해보았지만 그 분들도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 상황. 내가 가족으로서 최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과 동시에 언니의 멘탈을 케어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가 중국인지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으로만 가득했는데..


어쨌거나 나는 지금 상하이 한복판에 서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냥 이유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한참 동안 아직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화려한 상하이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언니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언니, 어쨌든 우리 지금 살아있잖아.

휴대폰 잃어버렸다고 우리 인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우리 그냥 지금을 즐기자.

어쨌든 우리 지금 상하이라는 도시에서 살아있잖아.


다행히 다음 날에 인천 공항에서 휴대폰을 찾았다며 연락이 왔고,

언니와 나는 남은 여행 동안 내 휴대폰 하나로 서로 돈독하게 붙어다니며 여행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일상 속의 안온함과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게 여행이구나.

뜻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할 능력과 인생을 살아가야 할 태도에 대해 알게 해주는 것이 여행이구나.

내게 이런 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해 준 상하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안녕, 상하이. 그리고 또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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