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끝은 결국 서로라는 걸

이터널 선샤인, 사랑의 정수를 담은 영화

by 강수아


끝이 어딘지 알면서도 다시 달려가는 것처럼 …


내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수없이 많은 영화들이 떠오를 것 같다. 하지만 분기별로, 시기별로,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냐고 물으면 후보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내게 바로 그 후보 속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영화이다. 어린 왕자 같은 영화랄까. 다시 보면 볼수록, 나이가 들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느껴지는 게 다른 영화. 또 다른 생각과 경험을 지니고 있는 미래의 내가 다시 봐주었으면 하는 그런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사랑이라는 것은 참 잔인하기 그지없다고 느꼈다.

너무 너무 잔인하다.


서로가 너무 미워서, 서로의 결점이 끔찍하게도 싫어서 기억을 삭제한다는 결론까지 이르게 된 클레멘타인과 조엘. 분명히 서로가 좋아서 그리고 더 알아가고 싶어서 시작한 관계인데도 어째서 이 두 사람은 서로를 각자의 기억 속에서 그리고 인생에서 티끌 하나 없이 지워버리기를 선택한 걸까. 서로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시기를 지나 지긋지긋하고, 더는 꼴도 보기 싫은, 내게 끔찍한 기억만을 안겨준 사람이라는 결론이 남았다는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 사람은 완전할 수 없지. 아무리 완벽해 보이고, 결점이 없어보이고, 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사람이라고 한들 오점이 하나 없는 완전한 인간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조엘의 빈 부분이 클레멘타인의 전부가 되고, 클레멘타인의 빈 부분이 조엘의 전부가 되던 시기를 지나게 되면 남은 조각들만이 보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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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알아가게 되면 또 시간이 지나다 보면.. 서로에 대한 기대와 편견이 깨지는 건 당연한 순리인데, 그게 사랑에 국한되는 순간부터 사람은 그 관계를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 같다. 모 아니면 도, 만남 아니면 이별. 가족이라면, 친구라면 그냥 넘어가고 지나칠 수 있는 것들도.. 연인이라면 가장 가까운 관계니까, 어쨌거나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까 너무 당연하게 그 사람에게 바로 묻고 따져야 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소리쳐야 하고, 기억을 삭제하기까지 해야 하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이라는 그 나무의 뿌리 하나가 가지 이곳 저곳으로 퍼지고 있는 독신호를 무시하게 만드는 거다. 너가 이래서 싫었고 저래서 싫었고 그래서 너에 대한 기억을 지울 거야. 영원히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 라는 결론까지 내렸는데도 왜 이 기억만큼은 남겨두고 싶은 거지. 너가 너무 끔찍하게 싫은데도 이것만큼은 정말 좋았는데. 라는 생각들이 스멀 스멀 올라오고, 그래서 우리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그냥.. 다시 시작해봐도 되지 않나? 라는 원점의 결론이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다시 지켜보고 상기시키고 괴로운 감정들을 합산해서 이별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을 텐데.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애당초 본인들의 선택에 의해 사라져가고 있는 기억들임에도, 결국 그 일부만이라도 붙잡으려 간절해한다. 그렇게 너무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들었는데.. 결국 그냥 서로의 옆에 누워서 미소를 짓던 그 순간 하나가 그 긴 시간을 송두리째 무마한다. 서로를 끔찍이 밀어내고 영원히 지워버리고 싶던 모든 마음들이 눈 녹듯 사라지며 다시 모른 척 하는 마음, 사랑은 원래 이렇게 유치한 것일까.


이터널 선샤인이 내게 알려준 사랑은 같은 곳을 빙빙 돌며 선회하는 초침 시계 같다. 지긋지긋하고 똑같은 길만을 가는데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는. 어쩌면 원점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그 긴 과정을 거치는 것만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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