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투박한 서사가 주는 용기,「사람을 기획하는 일」

보여주는 세상에서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을 위한 기획서,

by 이러꿍

이제 완벽함은 더 이상 희소한 가치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은 점점 더 결점 없는 이미지들을 쏟아내고, 우리는 마치 완벽함마저 복제가 가능해진 시대에 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정작 화려하게 빛나는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길게 사로잡지 못한다. 근사한 콘텐츠 속 뒷배경과 행복한 미소는 가끔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우리의 마음이 오래 머무는 곳은 오히려 약간은 흐트러지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곳이다. 완벽함과 화려함이 눈길을 끌어도, 결국 사람들은 투박함에서 묘한 해방감과 위로를 얻는다.


왜일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여주기 위한 화려한 삶보다, 땀 흘리며 살아내는 그 삶이 진짜 우리와 더 가깝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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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은지 PD의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람을 기획해 온 저자는 렌즈 너머, 뜨겁게 살아있는 사람의 온도를 포착해 낸다.




못남의 가치

저자는 묻는다. 고르기 힘들 정도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것은 엄청난 편집 기술이나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찌질함이나 힘든 일을 견디며 나아가는 일상의 서사를 발견해 내는 눈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자칫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르는 '사람을 기획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에 숨겨진 그 만의 꾸밈없는 서사를 찾아내는 것이리라 필자는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여러분 안의 열등감과 생활 속 곤궁함들, 이것들을 제거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 번지르르 잘난 것들보다, 오히려 못나서 더 진짜이며 못나서 더 쓸모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 「사람을 기획하는 일」, 208p


이어서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결국 우리가 사랑하게 되는 이들은 설사 못났더라도 본인을 조금이나마 보여줄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전에 자살 기도를 한 팬에게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가 전한 편지에 그런 말이 있었다. 타인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는 건, 마치 다른 이의 하이라이트와 자신의 비하인드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우리는 종종 나만이 가진 모습을 초라하게 생각하고, 편집된 타인의 세상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흐트러진 틈새 속으로 보이는 진짜 모습이야말로 오직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서사이자 기획일 것이다.




진짜 나의 생각은?

자신의 생각과 의견, 기준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줄곧 의견을 의탁하곤 한다. 갈등이 두렵고, 타인의 공감을 얻지 못할까봐. 그리고 요즘은, 너무나 편리한 도구가 존재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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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공지능은 궁금한 점을 해결해 주는 것을 넘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영화를 만들기까지 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훨씬 효율적인 경쟁자와 맞서게 된 우리가 갖춰야 하는 것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오로지 자신의 말과 태도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안의 알맹이. 그것이 앞으로의 삶을 기획해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지 않을까.


저자는 이어서 브랜드에는 태도가 있고, 철학이 있다고 말한다. 흔들리지 않는 그 정체성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은 중요한 브랜드 전략이다. 마찬가지로 나만의 정체성을 어필하기 위해 결국 중요한 것은 화려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와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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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필자에게 단순한 기획 제작기를 넘어, 인생에 대한 울림을 준 이유는 바로 태도에 있다. 스쳐 지나갈 타인의 취향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누군가의 속에 담긴 사연에 공감하고 공감시키는 일. 기획은 마치 사랑과도 비슷하다.남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자신만이 살아온 그 자취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용기를 주는 콘텐츠가 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태도를 가진 모든 이는 훌륭한 삶의 기획자이다.


책을 관통하는 이러한 메시지는 콘텐츠나 브랜드 마케팅 관심자가 아니더라도 세상과 관계 맺는 모든 이들에게 유효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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