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아래에서도 끝나지 않는 연극,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
「fin」
소설 「fin」은 화려한 연극 무대 뒤, 현실을 배경으로 네 사람의 위태로운 삶을 섬세하게 비춘다. 유진 오닐의 대표작,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fin」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막이 올라가는 ‘긴 여로’ 그 자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대와 현실의 흐릿한 경계는 글을 읽어 갈수록 독자의 마음을 묘하게 사로잡는다. 무대 위, 위태로운 흐름은 그를 연기한 이들에게 짙게 남으며 나아가 주변에 번져간다.
화려함 뒤에서 천천히 무너지는 배우들. 그리고 그들을 어느 순간 자신을 잃어버린 채 증오에 잠식되어 가는 윤주와 상호. 네 사람 모두가 위태로운 경계를 타는 모습을 통해 소설은 감춰졌던 그들의 욕망과 불안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혼란 속에서 독자가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인물은 바로 기옥이다. 불안 속에서도 다시 배우의 삶을 향해 나아가려 하는 배우 기옥은 곤란할 때마다 '나는 배우니까'라고 되뇌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기옥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그건 기옥에게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배우니까."
"기옥은 좀 더 안쪽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가면을 쓰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기옥은 알고 있었다."
- 26p, 「fin」
압박과 불안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려는 그녀의 모습은 어쩌면 일상을 대하는 방식 그 자체가 고도로 훈련된 배역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 기옥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고독한 방식을 통해 삶을 겨우 지켜간다. 독자는 위태로운 그녀의 모습을 통해,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스스로는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 묻게 된다. 나는 진실한 모습으로 삶을 대하는가. 혹은 세상이 요구하는 정상성에 매달리며 연기하듯 견딜 뿐인 것은 아닐까.
기옥과 윤주의 이야기에 이어 독자가 마주하는 상호의 이야기는, 꿈에서 좌절된 채 그 꿈을 이룬 이의 곁에 머물러야 하는 이의 상실감을 통해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그 상실의 끝에서, 상호는 침대에 누워 늦지 않았다는 감각을 지니고 있던, 불행을 생각하지 않았던 날들을 떠올린다.
"늦지 않았다는 감각으로 현실에 발 맞추어 살던 때가 있었던가. 고민 없이 천진하게 순간순간에 몸을 맡긴 채 내일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던 때가.”
“베개에서 냄새가 났다. 그런 냄새가 자신에게서 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 118p,「fin」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남은 건 자기혐오로 얼룩진 생각들 뿐이었다. 타인을 지탱하는 역할에 잠식당한 채, 그는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잃어간다. 위수정 작가는 그 상실의 궤적을 냉혹할 정도로 섬세하게 따라간다.
위수정 작가의 「fin」은 '끝'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다.
배우의 대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이윽고 커튼이 내려간다. 작가는 그렇게 끝을 맞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사실은 또 다른 막이 올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고민할 여지를 남긴다. 이 위태로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레 스스로의 연극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필자 역시 「fin」을 읽으며 지금 나는 몇 막 즈음에 와있는지, 내 연극이 끝날 때도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 글에 사로잡혀 멍하니 곱씹게 되었다.
하지만 「fin」에서 끝은 곧 다른 시발점이 되고, 또 다른 무대가 다시 밝혀진다. 이 소설은 인물들이 흔들리는 균열에서 느끼는 감정을 섬세히 포착하며, 그 여운을 독자에 마음에도 겹쳐지게 하는 깊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8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