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by Karma

부처를 죽이라니.

불교 신자가 아닌데도, 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말을 한 사람이 선불교에 큰 획을 그은 어느 대선사의 어록이라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일이다. 승려가 부처를 죽이라니. 그러나 사실 우리는 그의 어록 전체를 읽어봄으로써 참 뜻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은 ‘의지하지 않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다.

의지하지 않는 그대는 모든 것을 환히 알고 모자람이 없다.

타인에게 배워 미혹되지 말고, 내면에서나 밖에서나 만나기만 하면 바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가까운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라.


그래야 비로소 해탈을 얻어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깨달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 임제의현


이제 알았는가? 의현대사가 죽이라고 한 대상은 실제 어떤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신뢰하지만 내가 미혹당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들을 죽이라는 의미는 살생의 의미가 아니다. ‘맹목적이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많은 말을 들으며 자아를 형성하고 결정하게 된다. 그들은 때로는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고, 부모이고, 친척이며 친구이다. 가까운 자들의 다정함이 담긴 충고는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믿고 참고하기에 결정의 순간,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중요한 결정을 하는 순간,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며, 나의 감이 가장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구하고 들어봐도, 결국 내 상황에 제일 잘 맞는 결정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타인에게 의존하여 결정하게 되면 그 일이 그르쳐졌을 때 얻게 되는 후회는 평생 남게 된다. 타인의 조언은 언제까지나 부차적인 것으로 그쳐야 한다. 중요한 결정일 수록 우리는 더더욱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나 스스로 오롯이 져야 한다. 누구의 핑계도 댈 수 없다. 행복이 온다면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겠지만, 혹여나 고통이 온다 해도 그 고통 역시 온전히 감내해야 한다. 잔인하지만 그래야 발전할 수 있다. 사소한 숟가락질 하나도 남이 떠먹여 주는 것보다 서툴더라도 내가 해보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온전한 내 것이 된다. 그 시행착오가 다소 오래 걸리고 바보 같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는 한층 더 성장하고 깊어진다.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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