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다음이 두렵다

2월 3일

by 최성중

나는 종종 운전을 할 때면 도로 위 ‘신뢰의 시스템’에 놀라곤 한다. 엄청난 무게의 쇳덩어리들이 상당한 속력으로 달리는 모습은 어찌 보면 매우 위험한 일임에도 일상이 되어 자연스럽다. 차선과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이 한 대만 있어도 대혼돈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우리는 그런 일을 교통사고라 부른다. 말 그대로 일상적이지 않은 ‘사고‘다. 보통 교통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이는 철저히 운전자 개개인에 대한 신뢰 속에서 작동한다.


현대 문명사회는 대부분 이런 신뢰 속에서 작동한다. 교통뿐만이 아니라 신용 거래를 비롯해 공공장소에 여러 사람들이 밀집해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사회 시스템의 신뢰가 붕괴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퍼졌을 때 우리는 모든 타인을 잠재적 바이러스 보유자로 생각하게 됐고 기침 한 번이라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치솟았다.


신뢰는 우리 사회가 합의한 규칙을 모두 따를 것이라는 인식에서 자라난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켜졌을 때 차가 멈출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또 실제로 멈추지 않는다면 누구도 길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일부분에서 신뢰의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보류했고 국민의힘 지도부는 헌법재판관들의 사적 영역을 근거로 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최소 25% 최대 40% 인구는 지난 12월 3일 발생한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명백한 위법을 두고도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이해하는 시대가 됐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정치적 선택이 되는 시대가 됐다.


나는 이다음이 두렵다. 우리 헌법이 정한 종국적 결정인 헌법재판소 결정이 사회적 결론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차로 탈바꿈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한 역사강사는 “헌재를 휩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헌법이라는 시스템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시스템에 기대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김지운 감독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김수현(이병헌)은 순수악 장경철(최민식)을 죽이고 난 후 울음과 웃음 사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간다. 나는 이 장면에서 살인에서 묘한 쾌락을 느끼고 말았던 김수현의 모습을 읽었다. 악마를 극도로 미워한 나머지 본인도 조금씩 닮아갔던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북한과 중국 없이는 어떤 말도 못 하는 이들을 지켜볼 때면 김정은과 시진핑의 모습이 보인다. 홍장원 국정원 제1차장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예를 들어(안규백) 위원장이 집에서 편안하게 가족들과 저녁식사하고 TV 보는데 방첩사 수사관과 국정원 조사관들이 뛰어들어 수갑 채워서 벙커에 갖다 넣는다? 그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는 나라가 하나 있다, 평양. 그런 일을 매일 하는 기관이 어디? 북한 보위부, 이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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