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 편 >
심리학 공부를 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군 생활 동안 고통의 실체에 대하여 몰랐다. 하지만 물속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위기감이 나를 옥죄어왔고, 고립된 환경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해야만 했다. 그래서 ‘종교’, ‘명상’, ‘미신’ 같은 비(非) 과학적인 방법에 매달렸다. 당시 읽었던 책들은 상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내용의 [The Secret]과 [꿈꾸는 다락방], 내면의 존재를 사랑하는 [Love Your Self], [상처받지 않는 영혼], 그리고 하와이 종교에서 탄생한 [호오포노포노] 시리즈 등이었다. 각각의 책들은 부모님께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이러한 책들을 읽으면서 현세의 고통의 근원과 치유 방법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았다. 특히 '에크하르트 툴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은 군 생활 중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과거 또는 미래에 대한 번뇌로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내 마음에 파고들었다. 처음으로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개념을 접했고, 여러 번 정독하며 이를 실생활에 접목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심리학을 수학하는데 자양분이 되었다.
하지만 즉시 현실을 변화시키진 못했다. 잠깐 마음이 안정되어도 독서, 기도, 명상의 효과는 일시적이었다. 소외당하는 경험을 하면 또다시 괴로움을 느꼈다. 책의 지시대로 따라 했는데도 고통이 멈추지 않자 절망했다. 새로운 종류의 책으로 희망을 품으면 좌절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비록 군 생활 당시에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이러한 노력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책과 함께 사색하고 고민했던 부분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면에 한층 한층 쌓이며 내실을 다져갔다. 특히 고통과 삶,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고찰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됐다. 이러한 경험은 전역 후 변화란 토양에 거름이 되어 새로운 싹이 나도록 도와주었다.
글을 쓰는 행위 또한 버티는 데 도움이 됐다. 군대에서부터 하루를 마칠 때마다 일기를 작성했다. 모나미 볼펜으로 꾹꾹 누르며 속상하고 억울한 감정을 종이에 표출했다. 감정이 격한 날에는 고요한 식당의 빈 탁자에 앉아 한참을 울고 난 후에 1시간 정도 글을 썼다. 그러고 나면 마음의 응어리가 풀렸다. 또 기억을 반추하는 과정에서 해당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이켜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최대한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때부터 글을 쓰는 습관이 형성되었다.
여담이지만 그림도 많이 그렸다. 사물을 그리기 위해 모든 감각을 집중하면 그 순간만큼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내면의 에너지가 발현되는 예술 창작 활동은 고통을 다루는 좋은 도구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