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들에 전술한 것처럼 난이도는 낮지만 자주 해야 하는 술기들이 인턴의 주된 업무이다.
수많은 일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우리 인턴들은 연락이 오자마자 달려가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을 구분해야 한다.
병원에는 급한 일들이 어찌나 많은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는 새내기 의사들은 바쁘지 않은 일들은 여유가 생길 때까지 두고두고 쌓아두거나, 간혹은 그런 콜이 왔었다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이런 슬픈 처지에 놓이게 되는 일들의 대다수는 바로 ‘드레싱’이다.
상처 드레싱/ 출처 : 맨리케 어드벤티지
본래 드레싱(dressing)이란 상처의 치유 속도를 빠르게 하고 상처가 있는 부위에 추가적인 위해가 가해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거즈나 반창고를 의미한다.
하지만 병원에서 ‘드레싱을 해달라’는 것은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그 위에 거즈나 반창고 같은 드레싱 제제를 붙이는 과정을 붙여달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드레싱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인턴이 하는 일 중 가장 쉬운 일이 드레싱이다.
그저 상처 부위를 확인하고 소독한 뒤 다시 덮어주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니까
하지만 쉬운 일이라고 해서 금방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작은 상처가 한두 개 있는 경우, 혹은 T-tube나 C-line처럼 관이 삽입되어 있는 부위를 소독하는 경우는 게 눈 감추듯 끝나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않은 케이스가 훨씬 많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인다는 통풍 발작이 양쪽 손발에 온 케이스에서는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사이를 소독하고, 거즈를 끼워 넣고, 솜으로 전체를 뒤 감고 마지막으로 EB 밴드(탄성밴드)를 감는 데 총 30분이 걸렸다.
앞뒤를 포함한 전신에 물집이 생겼던 케이스에서는 간호사 선생님과 같이 드레싱을 했음에도 40분이 걸렸다.이렇게 되다 보니 드레싱을 마치고 나면 콜이 잔뜩 쌓여있는 건 일상다반 사요, 급한 일들이 잔뜩 몰려드는 상황에서 드레싱을 붙들고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상처 드레싱 / 출처 : 맨리케 어드벤티지
또한 드레싱은 급한 일이 아니다.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하루에 한 번꼴로 상처를 소독하거나 혹은 이틀에 한 번꼴로 소독을 한다.
상처 소독을 조금 늦게 했다고 환자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는 것도 아니고, 상처 소독을 빨리했다고 환자 상태가 눈에 띄게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급하지도 않고 확실한 변화도 없으니 드레싱은 일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뒤로 밀리게 되고, 어느샌가 '드레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외과에서 근무하던 동기가 한 환자에 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고, 그것은 드레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그 환자는 타 병원에서 여러 차례 암 수술을 한 뒤 소장이식이 필요한 환자였다.
이미 장유 착과 장피 누공 (장과 피부가 달라붙어 구멍이 생긴 질환)까지 생겨 여러 병원에서 더 이상의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했던 환자였다.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던 환자는 우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담당 교수님께서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셨다.
소장 이식수술과정 / 출처 : 서울삼성병원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진행한 뒤, 병원 의료들은 본격적으로 드레싱에 총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드레싱이 필요한 부위가 얼마나 컸던지, 혼자 할 때면 40분, 서너 명이 함께하면 20분씩 걸리는 드레싱을 하루에 적어도 3번, 많으면 네다섯 번까지도 매일 시행했다.
인턴과 간호사 선생님 전공의와 교수님까지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이념 하나만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으며 최선을 다해 드레싱을 하였다.
그러한 시간이 반복되자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던 상처 부위에 점차 새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환자는 입원 당시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회복되어갔다.
수술부위 상처 / 출처 : 오체안 성형외과
이 일화를 듣고 나니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듯했다.
물론 여러 가지 치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지만 드레싱이 환자의 회복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음은 결코 과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중요하지 않은일이라고, 못하면 어쩔수 없는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드레싱이 결국 환자를 일상생활로 되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것이다.
급하지 않다고 중요하지 않은것이 아닌데
상처의 관리는 치료의 기본인데
제멋대로 판단하고 바쁘면 어쩔수없다며 드레싱을 끝까지 뒤로 미루던 지난날들들이 떠올라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성형외과에 근무하기 시작하며 드레싱의 가치를 다시한번 깨닫게되는 일화가 있었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오랜시간 누워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뼈가 돌출되어있는 부위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진다.압력이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그 부위가 점차 괴사되기 시작하면 결국 '욕창'이라 불리는 상처가 생긴다.
욕창상처
성형외과 인턴은 이런 욕창을 드레싱하는 일도 한다.
상처부위를 매일 소독하고 드레싱제제를 붙인 후, 드레싱부위를 사진으로 찍어서 전공의 선생님께 노티를 드리는것이 일과에 포함된다.
별생각없이 드레싱을 하고 사진을 찍기를 반복하던 어느날, 사진 갤러리를 정리하기위해 그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보았다.
소독을 할 당시에는 몰랐지만 시간의 순서에따라서 욕창상처들을 연속해서 보니, 2주일동안 상처부위가 가공할정도로 회복되어 있었다.
상처부위의 진물이 조금씩 줄어들고, 분홍색 새살이 차올랐던건 모두 다 드레싱의 힘이었던 것이다.
드레싱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들은 병원에서 하는 일들중 무엇하나 의미없는 일이 없고 드레싱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배울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드레싱이야말로 가장 가까운곳에서 환자와 소통하며 할수있는 치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