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인턴] 순환근무 병원생활

봇짐메고 이사다니는 인턴의 삶

by 작문의

OOO 중앙 의료원

10개월간 근무해왔고, 앞으로 2개월을 더 근무하게 될 우리 의료원은 자타 공인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의료원이다.

총 8개의 브랜치 병원으로 이루어진 의료원은 고속 터미널 바로 앞에 위치한, 대한민국 5대 대형병원 중 당당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가 필요한 여러 지역에 뿌리내리고 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북한산 지척에 위치한 병원

당직실에서 한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한강 불꽃축제의 제일 명당인 병원

이렇게 3개의 병원이 서울 각지에 퍼져 수도의 의료를, 인천과 부천 의정부 그리고 수원에 분포되어 경기권의 의료를, 그리고 아래로 조금 더 내려와 빵의 도시 대전의 의료까지 담당하고 있다.

우리 몸 구석구석 촘촘한 그물망처럼 퍼진 혈관들이 작은 세포 하나하나 밤낮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처럼, 우리 의료원 역시 밤낮으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환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수많은 병원에서 수많은 환자를 보는 만큼 각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다.


매년 200명 이상의 인턴을 선발하고는 있지만 워낙 병원이 많기에 늘 인력 부족에 시달려 매년 인턴의 숫자를 늘려달라고 건의를 하고 있을 정도

근무하는 전공의들의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알기 어려운 초 대형 교육기관인 우리 의료원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순환근무'라는 다른 병원과 구별되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오늘은 이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리 유쾌하지 못한 사실이지만,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분의 질병, 질병의 관리 정도, 위생상태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이는 각 지역의 평균 소득, 평균 연령층, 직업군,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율 등등 수많은 요인들이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강남에 위치한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군과, 대전에 위치한 병원에 방문하는 환자군에는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병원별로 많이 보게 되는 질환들이 다르고, 의사들 역시 자주 접하는 질환들이 병원별로 다르다 보니 근무 병원에 따라 질환들을 처치하는 데에 요구되는 경험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신장이식을 하는 병원과 한 달에 한 번 신장이식을 하는 병원은 숙련도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허나 강남의 환자도, 대전의 환자도 모두 의사가 필요한 같은 환자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의료원은 다양한 환자군들을 보며 경험을 쌓고자 하는 명목으로 모든 전공의들이 주기적으로 순환을 하며 각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으며, 이는 우리 의료원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이다.


인턴은 6개월에 한 번씩 순환근무를 하며 1년에 총 2개의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다.

나는 상반기에 서울에서 한 곳, 하반기에 지방에서 한 곳을 배정받았고, 현재는 하반기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우선 나는 순환근무가 좋다.

병원을 순환하면 환기가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처음엔 낯설다가도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면 언젠가는 그곳에 익숙해진다.

익숙하다는 뜻은 새로운 자극이 적다는 뜻이고, 그만큼 타성에 젖기도 쉽다.

똑같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나는 같은 환경이 계속적으로 지속되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얻는 활기가 스트레스를 넘어서고, 새로운 일들이 주는 신선한 에너지가 좋다.

새 시작은 늘 즐겁고, 그렇게 얻는 경험들로 만들어지는 나만의 색깔이 좋다.

내가 인턴으로써 수련병원을 선택할 때 우리 의료원을 제일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다.


또한 인턴으로서 경험하고 직접 해볼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어진다.

같은 과라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면 마치 다른 과에서 근무하는 것처럼 새롭다.

상반기, 하반기에 한 번씩 근무하였던 산부인과

서울에 있을 때 인턴이 하는 일과 대전에 있을 때 인턴이 하는 일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어느 병원에서는 주치의를 보고, 어느 병원에서는 주로 수술방에 들어갔다.

또 어느 병원에서는 케이스 발표를 준비해야 했고 어느 병원에서는 소고기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분만의 개수가 너무나도 달랐다.

서울에서 근무할 때는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가 맞는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매일같이 분만을 하곤 했었던 반면, 대전에서 근무할 때는 낮은 출산율이 심각한 문제가 맞다는데에 백번 공감할 수 있었다.


타 지역에서 6개월 살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본가, 또는 본인의 대학교가 있는 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의대생들에게는 짧게는 몇 박 며칠, 길게는 몇 주 동안 여행을 가거나 학창 시절에 큰맘 먹고 외국이나 타 지역으로 한 달 살기를 하는 것 이상으로 기회를 갖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

물론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그 지역을 느끼는 것과 병원생활을 하며 그 지역을 느끼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차이가 있지만.. 하여간 여러 가지 도시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러본 적이 없다.

사진에서만 보던 북한산도 갔다 와 보고, 서울의 유명한 동네란 동네는 오프 때마다 발 바쁘게 돌아다녔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서울 생활을 해보겠냐는, 유럽 여행을 가서 관광지란 관광지는 죄다 돌아다니는 여행객처럼 서울에 대한 시골 사람의 갈증을 올해 서울에서 근무하는 6개월 동안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보통 우리 의료원에 지원을 하는 선생님들은 다들 나름의 큰 포부를 갖고 온다

공정한 경쟁을 하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자교와 타교의 차별이 거의 없기로 유명해서 전국 각지에서 지원자가 모여든다.

출신 학교와 관계없이 본인의 능력에 자신 있는 사람들, 즉 계급장 떼고 붙어보겠다는 선생님들이 주로 지원을 하다 보니 이런 사람들에게는 느껴지는 특유의 에너지와 멋스러움으로 병원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비슷한 동년배이지만 배우고 싶은 점이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았다.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자연스레 겸손해지며 나 또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고, 그렇게 알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소중한 인연들을 곳곳에 만들 수 있었다.


단점은 아무래도 정들었던 사람들과 6개월마다 헤어져야 하는 점이 제일 크다.

혈혈단신으로 대학병원이라는 큰 조직 안에 들어온 우리 인턴들은 서로가 서로의 등이 되어주었다.

가족도,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몰라주는 고충을 우리는 서로 들어주고 위로해 주며 시간을 견뎌내왔다.

그런 동기들과의 소중한 6개월은 언제나 쏜살같이 흘러가고 예정돼있는 헤어짐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면 순환근무의 모든 장점이 희미해지고 헤어짐이라는 단점만 느껴진다.


또한 짧은 기간을 텀으로 순환하다 보니 자취방을 구하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아무리 월세 계약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1년 계약이다 보니 6개월씩 방을 구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또 병원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어디 인턴들만 있겠나

수많은 레지던트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또 각종 직원 선생님들

모두가 출퇴근 시간을 아끼고자 병원 근처에 방을 구하다 보니 방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운 좋게 구한다고 해도 계약기간을 정하는데 여간 골치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전산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는 하지만, 병원별로 환자군도 그리고 전공의가 해야 하는 일의 범위도 모두 달라 적응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이 병원에서는 간호사 선생님들이나 응급구조사 선생님들의 업무였던 일들이 저 병원에서는 인턴의 업무가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병원마다, 또 과마다 로딩의 차이도 상당히 큰데, 이 병원에서는 제일 힘든 과가 다른 병원에서는 제일 근무하기 좋은 과가 되는 일 역시 매우 흔하다.


이렇듯 순환근무는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며 나에게는 장점이었던 것들이 남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여느 병원이야 모두 그렇듯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수련 시스템의 특징이 나에게 장점으로 더 다가온다면, 특히 우리 의료원의 순환근무가 장점으로 느껴진다면 다음 연도 인턴으로 지원해 보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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