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의료원 인턴은 상반기에 한번, 하반기에 한번 총 두 번의 휴가를 받는다. 공식적으로는 상반기에 5일 하반기에 5일로 1년에 대략 10일 정도 휴가를 받게 되는데, 동기 인턴들과 당직 날짜를 바꾸어 휴가 앞뒤로 오프를 붙여서 휴가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 토 일/휴가 5일/토 일 이런 식으로 5일이었던 휴가를 엿가락 늘이듯 최대 9일까지 늘려버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생기기도 하는데, 동기들의 배려로 이번 하반기 휴가는 이렇게 총 9일이 되었다. 역시 동기 사랑 나라사랑은 시대 불문 국적 불문이다. 물론 1월 한 달 동안 나에게 배정된 오프를 영혼까지 끌어모아 휴가의 앞뒤로 붙인 거라 휴가를 갔다 오면 당직 폭탄을 맞게 되겠지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찔끔 찔끔 나누어 쉬는 것보다 한 번에 몰아서 쉬어야 평소에 하고 싶었던 것들도 하고 여행도 갈 수 있으니까 뒷일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 지금의 나는 현재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든 되겠지
기숙사도 9일간 안녕이다
상반기에는 전공의 시험공부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휴가를 언제 가게 되던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대로 휴가를 보낼 수가 있다. 집, 국내, 해외 모든 곳이 가능하다. 나같이 미필 남자의 신분이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사전 준비는 쉽게 말하면, '병역을 기피하지 않을 테니 제발 해외여행 좀 보내주세요. 이렇게 증인까지 데려왔습니다'이다. 해외여행 관련 서류에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과 과장님의 사인을 받아 병원에 제출하고 국외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게 받은 허가서를 또다시 병무청에 제출해서 국외여행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근무하는 과 과장님과 병원이 내 신분과 결백함(?)을 증명해 주시는 셈이다. 이 과정이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빨리빨리 하면 하루 안에 행정처리가 가능하다. 또 인턴을 하면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둘도 없는 기회이므로 이까짓 절차는 두 번도 밟을 수 있다. 해외여행을 가려는 나의 의지는 그 어떤 것이라도 꺾을 수 없다.
출국을 위해 필요한 행정처리
학생 때는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다. 직장인은 시간은 없는데 돈은 있다. 시간도 많고 돈도 많은 시기는 내 인생의 언제쯤일까? 여하튼 여행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둔 돈을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휴가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상반기 휴가는 문제 될게 전혀 없지만 하반기 휴가는 말이 다르다. 하반기의 제일 큰 이벤트, 전공의 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본인의 휴가가 언제인지에 따라 휴가를 보내는 장소가 독서실이 될 수도 있고, 해변가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의료원 인턴은 휴가 날짜를 선택할 수 없다. 브랜치 병원마다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만 보통은 수련교육부에서 일정을 짜서 인턴들에게 통보하는 식이다. 휴가 일자를 인턴들끼리 조율할 수 있는 다른 병원들과 비교했을 때 자율성이 많이 떨어지지만 세상 모든 것엔 장단이 있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전공의 시험은 12월에 있다.
이 시기와 가깝게 휴가를 배정받을수록 휴가는 더 이상 휴가가 아니게 된다.
전공의 시험 1주일 전에 휴가를 받으면 과연 그 누가 마음 편히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시험이 얼마 안 남은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휴가가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바쁜 인턴생활로 시험공부를 많이 못 했던 경우, 휴가 기간을 빌어 못다 한 공부를 많이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휴가 기간에 공부를 많이 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동기들도 많이 있다.
오랫만에 다시찾은 고향터미널
하지만 나는 휴가는 휴가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휴가라면 모름지기 비행기도 타고, 코에 바람도 쐬고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래서 내가 생각했을 때 최고의 휴가 기간은 1월이고, 그다음은 9월이나 10월이다.
모든 결과가 다 나온 후 마음 편한 말턴에 떠나는 휴가
혹은 상반기 인턴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병원에서 새 시작을 하는 동시에 떠나는 휴가
그저 생각만 해도 속이 뻥 뚫리고 기분이 좋을 것 같지 않은가?
기가 막히게도 나는 1월 둘째 주에 휴가를 배정받았다.
하반기 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9월, 근무 시작 전날 배포된 휴가 표를 보는 순간 기쁨 가득 포효했다.
여행을 함께할 배낭
상반기 휴가에 이어 이번 하반기 휴가 역시 해외에서 보내기로 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매일 일상을 함께했지만 내가 서울로 인턴을 가게 되면서 얼굴을 자주 못 보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