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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문의 Jan 18. 2024

[병원인턴] 인턴들의 속마음 (Int. B)

인턴 B 씨의 인턴생활 후기


Q. 인턴 일을 막 시작했을 당시를 돌이켜보면 그땐 어땠었나요?


Int. B : 처음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첫 출근을 하기 전,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그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 세세하게 인계를 분명 받았었지만 전혀 감이 안 잡혔죠. 

인계를 받으면서도 내 눈에 초점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분명 귀로 듣고는 있는데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건 없고, 그저 반대편 귀로 흘러 나가는 것만 같았죠.

그렇게 어찌어찌 인계를 받고, 첫날 출근을 하는 날이 되었죠. 눈을 뜨는 순간 딱 한마디가 머릿속에 울리더라고요. 아 뭐 되었다.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출근버스를 탔는데, 저는 시내버스에도 조조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음 알았어요. 이 시간에 버스를 탈 일이 있었어야 말이죠. 앞으로 매일 이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마치 가슴에 바위를 올려놓은 것만 같았어요.

출근해서 업무 프로그램을 켰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낫 놓고 기역 자 모르는 상황이었죠.

심지어 제가 3월에 돌았던 과는 병원에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셔서, 인턴이 주치의를 봐야 하는 과였어요.

모든 병동일, 주치의 일, 당일 입퇴원 처방, 의무 기록, 처방 이 모든 것들을 제가 해야만 했죠.

구르고 깨지고 우당탕탕.. 살면서 제일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퇴근을 하고 자취방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며 '내가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낯섬, 무력감, 당황스러움, 긴장감 등등 수많은 감정들로 범벅이 되었던 하루였어요.





Q. 제일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Int. B : 3월 그 한 달이 제일 힘들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예방접종을 정말 확실하게 맞았어요. 

한 환자가 생각이 나네요.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3월에 근무했던 과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안 계셔서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제가 봐야 했어요. 어느 날 응급실에 환자가 왔어요. 중국인이었죠. 다행히도 한국어가 가능하신 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한국인들 끼리처럼 유창하게 의사소통이 되느냐, 그건 또 아니었어요.

X-ray와 CT를 촬영해 보니 Ureter stone이 있었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렇게 어찌어찌 필요한 조치를 하고 마취과에 연락까지 해서 수술방을 어레인지를 했어요. 그대로 교수님께 연락도 드렸고요.

그런데 수술 예정 한 시간 전에 제가 유심히 보지 못했던 랩 결과를 교정한 뒤에 수술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며 마취과 선생님께서 연락이 오신 거예요.

외래에 찾아가 교수님께 말씀드리니 정말 단단히 혼났어요. 제 잘못이었죠. 주치의로써 마땅히 챙겼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때 좀 허탈하더라고요.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구나. 내 능력이 안 따라주는구나

좋은 의사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을 하는 의사가 되기까지도 길이 멀구나 하는 한계를 느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 일들을 계기로 더 열심히 했었고, 결국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Q. 인턴을 하며 어떤 좋은 기억들이 있나요?

Int. B : 퇴근 후 동기들과 같이하는 술 한 잔이 가장 좋았어요. TV에서만 보던 직장인의 삶을 내가 살고 있구나 하는 일종의 감격도 있었고요. 마치 성숙한 직장인이 된 것만 같았어요. 

또 일을 하면서 감사함을 받을 때도 참 좋았어요. 인턴을 하다 보면 욕창 드레싱을 참 많이 하게 돼요

제가 맡았던 환자 중에는 전신에 욕창이 있어서 전신 드레싱이 필요한 환자분이 계셨어요. 한번 드레싱을 시작하면 30분이 걸렸거든요.

저는 왠지 이 환자분에게 마음이 쓰이더라고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이 환자분 드레싱만큼은 꼭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하루 이틀 드레싱을 하면서 보호자분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저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참 많이 해주셨어요. 기분도 좋고 뿌듯했어요.



Q. 과를 지원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Int. B :  저는 피부과에 지원을 했는데, 학생 때부터 피부과에 관심이 있었어요. 

물론 피부과 일편단심은 아니었지만, 늘 고려 사항에는 있었죠. 이비인후과나 성형외과, 안과처럼 마이크로 수술을 하는 과들에도 관심이 있었어요. 

저는 산부인과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어요. 아 내가 수술이 적성에 맞는구나. 그리고 내가 체력이 생각보다 많이 약하구나. 

수술이 재미있었지만 그 힘든 수련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손이 느려서  그래서 수술하는 의사로서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 같기도 했고요.

그래서 손을 많이 쓰지만 수술하지는 않는 과를 생각하니 결국 피부과가 남더라고요.

거기에 전 눈으로 딱 볼 수 있는, 직관적인 것들이 좋았어요. 병변도 그리고 병변이 회복되는 과정도 눈에 보이는 게 마음이 편했어요. 

여러 가지를 고려하니 피부과가 제 적성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훌륭한 인턴이란 어떤 인턴이라고 생각하시나요? 

Int. B : 일을 잘하는 인턴이죠. 병원은 더 이상 학교가 아니라 직장이니까, 일을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럼 일을 잘하는 게 과연 어떤 것이냐,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이어지게 되는데요. 저는 의사소통을 잘 하는 인턴이 일을 잘하는 인턴이라고 생각해요.

병원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장소거든요. 교수님, 레지던트 선생님, 간호사, 간호조무사 선생님들

여러 선생님들과 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일을 하는 구조라,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혼자서 잘하는 건 의미가 없죠.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또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구별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구별을 잘해야만 같은 시간에도 더 높은 성과를 낼 수가 있어요. 




Q. 순환근무는 어땠어요?

Int. B : 근무했던 병원에 이미 적응이 된 상태에서 다음 병원에 다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꽤 필요했어요.

같은 의료원 소속이라 얼추 비슷할 것 같았는데 다른 병원은 다른 병원이더라고요. 

전산 프로그램만 비슷하지 그것 이외에는 많은 것들이 새로웠어요.

병원 분위기, 인턴 업무의 범위, 각 직종 간의 관계 등등 ... 

하지만 적응이 되니까 많은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도 있고, 그들로부터 많이 배울 수 있었죠.

또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른 만큼 많이 배울 수도 있었어요.

단점은 유목 민족이 된 것 같다는 점이 있어요.

한 병원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새로운 병원으로 떠나야 하니까요. 

한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계속 떠돌이 생활을 한다는 점이 장점이자 곧 단점인 것 같아요

세상 모든 일은 양날의 검인 법이니까요.




Q.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Int. B : 인턴을 10개월 정도 하니까 이제 병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거든요. 그래서 레지던트를 시작하기가 더 두려워요 하하

처음 인턴 일을 시작했을 때  막연한 두려움이 느껴졌다면, 이제는 구체적인 두려움이 느껴져요.

새로운 무언가를 마주한다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 양가감정이랄까요

저도 제가 잘해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





Q. 후배 인턴들에게 한마디를 해준다면?

Int. B : 인턴생활을 결과만으로 속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게는 A턴부터 C턴이 정해지는 인턴 성적, 크게는 레지던트 지원 결과까지 우리들은 늘 평가를 받고 선택받기를 원하는 입장이에요.

그렇다 보니 결과에 큰 의미를 두게 되고, 결과가 지난 10개월을 대변한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기대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오면 속상하고,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오면 기쁠 거예요. 

하지만 잘 되든 못되든 무던히 넘어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열심히 하지 않는 인턴은 없어요. 다들 잠을 줄여가며, 식사를 걸러가며 일하죠.

내가 못해서 떨어진 게 아니고, 내가 잘해서 붙은 게 아니다.

결과가 어떻든 이렇게 생각하기를 바라요. 나의 피 땀 눈물을 평가절하하지도, 평가절상하지도 않아야 해요.

인턴을 했던 기억이 분명 어디서든 도움이 될 거예요.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Int. B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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