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고의 가치를 알아줄 출판사 찾기
원고가 준비되었다면 이제 나의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줄 출판사를 찾아야 한다. 사실 출판사와 함께하지 않더라도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출판사 없이 스스로 출간하는 '독립출판'이라는 제도를 이용할 수도 있고 실물 책 없이 전자책(e- book)만 출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내 원고의 가치를 알아주는 출판사와 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출판은 내게 전혀 낯선 새로운 분야였고 그렇다면 전문가와 함께하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출판사에 연락을 해야 할까?
사실 나는 알고 있는 출판사가 한 손에 꼽았다. <김영사>, <길벗>, <웅진지식하우스> 등 우리나라 매출 Top10안에 드는 출판사들은 익숙하지만, 그 외에는 아는 바가 없었다. 기업으로 따지면 삼성, 현대, LG, 네이버, 카카오 말고는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출판사들과 협업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책을 처음 내는 나에게는 가능성이 많이 적은 일이었으므로, 일단 업계에 어떤 출판사들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난 곧바로 교보문고에 접속해 책을 베스트셀러 순서로 나열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출판사들이 있을 줄이야. 에세이 책을 위주로 찾아봐도 출판사가 수십 개나 있었고, 소설이나 논픽션으로 범위를 확장하니 그 개수는 백여 개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다음은 베스트셀러 순서로 출판사를 조사해 보았다. 익숙한 출판사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꼭 대형 출판사만 베스트셀러를 배출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소 출판사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책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었다. BTS가 처음에 빅히트라는 작은 소속사에서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출판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내 원고의 가치를 알아봐 줄 출판사를 찾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의 이름을 메모장에 나열해 놓고 하나씩 검색해 어느 책들을 출판하는지 하나씩 조사해 보고 각 회사마다 색깔이 굉장히 뚜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느 출판사는 사회철학 장르의 책이 주를 이루었고, 어느 출판사는 소설 장르의 책이 주를 이루는 등 주력으로 밀고 있는 장르들이 각각 달랐다.
우선 에세이를 주력으로 하는 출판사들을 추렸고, 그중에서도 나처럼 유명하지 않은 신인작가들의 책이 많이 출간되었던 출판사를 또 추렸다. 그런 뒤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으로 향했다. 온라인에서 보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에세이들이 잘 팔리는지, 어떤 종류의 에세이들이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에세이 코너에 있는 책들을 샅샅이 보며 출판사들의 이름을 메모했고, 집에 돌아와서 새롭게 알게 된 출판사를 같은 방법으로 조사해 나갔다. 회사 사이트가 있는 출판사도 있었고,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사이트를 갈음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대략 30개의 출판사로 추려졌고 나는 각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하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출판사에 출간을 제안할 때는 기본적으로 출간 기획서와 샘플 원고를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야 한다. 출간 기획서란 내가 출간하고자 하는 책에 담고 싶은 이야기와 다른 책들과의 차별점 등을 설명하는 일종의 자기소개서이다. 샘플 원고란 내 책의 장점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원고의 일부분만을 발췌한 것으로, 읽는 이로 하여금 짧은 시간 안에 내 책의 포인트를 파악하게 끔 하는 목적의 원고이다.
출간 기획서를 작성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책과 콘셉트가 비슷한 책이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가, 나와있다면 그 책들의 얼마나 시장성이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인턴생활 에세이는 대략 세 권 정도 시중에 나와있었다. 홍순범 선생님의 <인턴일기(초보의사의 서울대병원 생존기)>, 닥터 X의 <인턴 X>, 김민규 선생님의 <의사가 되려고요>가 그 책들이다.
인턴 생활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생각은 역시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내가 의과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위 작가님들은 본인의 인턴생활을 솔직하게 담은 훌륭한 작품들을 세상에 남겨주셨다. 나와 콘셉트가 비슷한 책들이 이미 시중에 세 권이나 나와있는 만큼 나의 책은 그 작품들과 차별점이 있어야 했다.
나는 내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 걸까? 나는 수련을 받는 인턴의 현실과 병원생활로 인해 드는 개인적인 고민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이 후배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 되기를 바랐다. 의과대학 학생 시절과 인턴생활 동안 내 머릿속에 강하게 떠올랐던 질문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어려움들을 낱낱이 공개하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인턴 눈에 비친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인턴 역시 사람이고 병원 역시 사람 사는 공간이라고. 또 인턴은 레지던트라는 번데기가 되기 위한 애벌레 시절이라고. 궁극적으로 나는 병원에서 일하는 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막내 의사로서 바라보는 세상과 병원 안팎의 일상을 전하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책에 수록할 내용들을 정하고 나니, 얼추 나만의 색깔이 담긴 목차가 완성되었다. 나의 목차는 선배님들의 책에 실린 목차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을 가졌고, 이는 내 책의 방향성이 되었다.
참고로 출간 제안서는 다양한 형식으로 작성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는 한글이나 워드 파일에 글 형식으로 출간하고자 하는 책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천 그루 숲의 에디터 분께서 유튜브에 올려주신 영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나는 다른 방식으로 출간 제안서를 만들기로 했다.
'출간 기획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원고를 투고받는 출판사가 한눈에 보기 쉽게 직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에디터님의 말씀은 동종업계에 있지 않은 나라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딱딱한 줄글의 출간 제안서는 내 원고가 가진 장점을 살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밝은 배경의 PPT에 핵심 내용을 간추리는 방식으로 출간 제안서를 제작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삶의 경험이 쌓이며 피부에 와닿는 삶의 진실이 있다. 삶은 끝없는 마케팅의 순간들이다. 출간 제안서를 통해 원고가 가치 있다는 것을 출판사에게 설득해야 했고, 출판사로 들어오는 수많은 원고들 가운데서 선택받아야 했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글을 썼고 내용이 좋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선택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내가 훌륭한 능력을 갖는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나는 수십 군데 출판사에 첨부파일과 함께 메일을 보냈고 긍정적인 답변이 온 몇 개의 출판사 중 <미다스북스>라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 내심 기대했던 출판사들 중 한 곳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내가 이 출판사가 마음에 들어왔던 이유는 전문 작가들의 책만 출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본인만의 경험을 착실히 쌓은 사람이라면 초보 작가라고 해도 미다스 북스에서는 손을 내밀어 주었다. 특히나 간호사, 의사, 선생님 등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선생님들과 수차례 협업을 한 경력이 있던 출판사이기에 내 원고의 가치를 잘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가장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평소에 얼마나 미다스북스에 관심을 있었는지를 출간 제안서에 그대로 녹여내었었다. 그동안 읽었던 에세이들, 그리고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에세이들을 담았고 미다스 북스와 함께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마 이 페이지가 출판사와 좋은 인연으로 만날 수 있었던 데에 큰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나는 <미다스북스>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고 우리는 투박한 상태의 원고를 잘 다듬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