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학교에서의 역사교육 (2017) (OO중학교 문집에 수록)
학교는 하나의 작은 사회와도 같습니다. 우리 학교의 막내인 1학년들부터 맏이인 3학년학생들, 그리고 학교를 전체적으로 운영하시는 교장, 교감선생님 이외에 여러 교직원분들까지, 좋든 싫든 학교 안에서는 많은 이들이 만나고, 함께 생활 하며 교류 합니다. 직장으로서 근무하는 교직원들은 물론이고, 어린 학생들도 학교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앞으로 더 큰 사회로 나가기 위한 밑거름을 마련해나가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께서 이를 위해서 교육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앞에서 말했다시피, 사회는 여러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장 여러분이 생활하는 교실을 둘러봐도,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성격이 차분한 사람, 목소리가 큰 사람과 같이 다양하게 이루어져있죠. 이렇게 제 각각인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 서로 티격태격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고 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가 함께 잘 살아 갈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하고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물들을 크게 나누어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도덕(윤리), 규칙(법), 조직(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도덕’은 사람 사이의 윤활유 역할을 해줍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우선시하는 생각과 행동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타인과 갈등들이 생겨나겠죠. 갈등이 지속되면 사회가 결국 파멸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겠고요. 그것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도덕입니다. 이른바, ‘타인을 사랑해라’, ‘서로 보면 인사해라’, ‘욕심보다는 양보가 우선이다.’라는 문장들은 강제적이진 않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남았습니다. 이런 도덕적인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갈등의 소지는 줄어들겠죠.
모든 사람이 이러한 가르침을 우선시하거나 존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규칙’입니다. ‘규칙’은 도덕규범 중에서도 최소한 꼭 지켜야 할 것들을 강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타인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 된다’ 등이 있겠죠. 이를 어기면 규칙에서 정한대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게 무서워서라도 규칙을 지키게 되겠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규칙은 강제성을 지닌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강제성은 과연 누가 집행을 해야 할까요? 타인을 처벌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규칙을 만들고 강제성을 집행할 ‘조직’을 만들자고. 그리고 그 ‘조직’에게 자신들을 지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고. 이로써 세 번째 ‘조직’ 특히 국가라고 불리는 존재가 만들어집니다.
국가는 여러 경로로 만들어졌을 겁니다. 처음 만들어진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힘이 강한 이들이 자신의 가진 바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목적이야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들은 사회 안에서의 갈등을 틀어막고 사회를 유형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시대가 흐르고 사회가 복잡해지게 되자 국가이라는 조직의 모습은 다양하게 변화되게 됩니다. 몇몇의 유력자들이 협의 하에 다스리는 나라, 힘이 약한 국왕을 정점으로 하여 다수의 귀족이 운영하는 나라, 강력한 국왕이 귀족을 비롯한 하위층을 다스리는 ‘절대주의 국가’ 등이 있어왔죠.
‘민주주의’는 이러한 변화 과정 중에 만들어진 국가를 조직하는 원리 중 하나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수 천년동안 한 명의 국왕과 소수의 지배층에 의해 억눌려 살아온 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여 왔습니다. 그런데 오랜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어느 날 불현 듯 깨닫게 됩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국왕이나 농사지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농민이나 잠자고 똥․오줌 싸고 밥 먹고 사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요.
이러한 깨달음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힘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나아가 사람들은 국가를 조직하는 방법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죠. 왜 힘이 있는 자들만이 국가를 운영하는가? 왜 대다수 시민들의 의지와 요구는 무시되는가? 하고요.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국가를 조직하되, 자신들이 국가를 조직할 힘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국가를 운영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다수의 시민들의 힘으로 현명한 사람을 대표자(대통령이나 총리, 국회의원 등)로 뽑아서 ‘주권’을 위임하는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뽑은 대표자가 무조건 잘하지는 않겠죠. ‘민주주의’는 대표자가 잘못했을 경우를 대비하여 시민들의 ‘저항권’까지도 인정합니다. 저항권이란 인간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탄압하는 대표자나 조직에 대하여 항거하는 시민들의 권리입니다. ‘저항’이라고 하니 폭동이나 반란과 같은 물리적 폭력사태가 떠오르나요? 하지만 저항권은 항상 과격하고 물리적인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저항권은 갈등을 조절하고 융통성있게 해결해나가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지금 전국 각지에서 타오르고 있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촛불집회 역시 시민들의 저항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살게 된 뒤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했냐고요? 그건 ‘적절하게만 이루어진다면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비롯한 ‘사회 교과’의 주된 목표는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데 있습니다. 다른 사회 과목들도 각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역사과목도 이 목표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죠.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줄게요.
첫 번째 이유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우선 우리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친해지려면 대상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장해 왔는지를 알면 성향과 취향, 성격까지도 대체로 알 수 있겠죠. 그래야 이 사람과 친해질 방법 역시 생각할 기회도 가지게 되겠죠.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역사를 통해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알려면 이 사회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어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일단 알아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면 숨쉬기 운동만 하며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사회로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할 수 있고, 이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개인의 실천으로도 연결되겠지요.
‘민주주의’로 한정시켜서 이야기한다면 민주주의가 수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소중한 것임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민주주의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통해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민주주의의 목적과 내용을 제대로 지키면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이루기 위해 실천할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공감하는 힘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온 과정을 공부하는 학문이자 과목입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과 각종 문물들은 사람들이 이룩한 것들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이룩한 사람들을 알아야 의문점을 해결 할 수 있는 학문이 역사라는 것이지요. 결국 역사는 사람을 배우는 학문이자 교과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제가 올해 수업을 하면서 여러 번 이런 이야기를 했었죠. ‘저를 비롯해서 여러분들은 과연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있었는지 되물어 봅시다.’라고요.
여러분, 꼭 예전부터 관심 있게 봐온 정도가 아니더라도 요즘에 옆의 친구가 무슨 고민이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무슨 일들을 겪고 있는지 생각해 본적 있나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주변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배려와 존중이 저절로 새겨질 것이고요. 역사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을 공부하게 하고 이것은 현재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는 첫 단추가 될 것입니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도 힘을 보탤 수 있겠지요. 앞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목적과 힘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고 했었죠? 역사를 공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과 민주주의 가장 큰 목적이자 힘이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역사를 적절하게만 공부하게 된다면,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데에도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혹시 학생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이룩하는데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나요? 여러분들은 가깝게는 며칠 전에, 멀게는 수십 년 전에 교과서를 통해 그리고 각종 서적을 통해 역사를 접해왔을 겁니다. 여러 이야기를 봤겠지만, 기억나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 사람들이 대단히 잘했던 것들일 거예요. 그런데 역사는 그저 잘난 사람들이 이룩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존경해마지않는 이순신 장군도 우리와 같이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겪고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보통 인간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위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원래 대단한 인간이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보통 인간이 대단한 일을 이루어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대단한 사람들은 대단하구나!’ 이런 명제에서 역사 공부를 끝내면 안 됩니다. 대단한 사람들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뭔지 봐야합니다. 그들도 보통 인간으로서 원칙을 지키고, 타인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알며, 자신의 조그마한 이익보다 큰 목적을 우선으로 한 사람들입니다. 이는 그들이 원래부터 타고난 것도, 한순간에 얻어낸 것도 아닙니다. ‘한번쯤이야’, ‘나 하나쯤이야’ 이런 생각을 하지 않고 기본 원칙과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하나씩 지켜나가는 모습을 쌓아갔기 때문입니다. 잘못 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그 반대가 되겠지요.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도 얼마든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겁니다.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역사교육은 사람(a person)으로 시작하여 사람들(People)로 나아갑니다.[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가 소속된 우리(We), 나 자신(myself)로 되돌아옵니다. 사람들이 살아온 경험을 학습하고 자신에게 내면화시켜 다 같이 함께 사는 사회로 되돌려줄 수 있습니다. 역사교육은 개인이 사람을 공부하여 사람다워지는 키워드를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다워지는 개인이 늘어날수록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더욱 빨리 완성될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라는 꽃과 열매로 맺혀질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어느 한 사람, 특정 집단이 주도해서 이룩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그 책임과 권리가 있어요. 그 책임과 권리를 실천하는 길은 사람에 대한 관심, 감정에 대한 공감력, 다양성에 대한 존중, 현상에 대한 비판 및 문제의식, 행동으로 표현으로 연결하여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공부의 목표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사회로 끝나고, 사회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나야 한다.’라는 저의 생각은 이와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작게는 학교 수업 안에서 크게는 저의 모든 활동을 통틀어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야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현재로서 가장 적절한 체제라고 믿는 민주주의와 역사공부(교육)는 저에게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사는 사회와 이가 이룩되는 민주주의 그리고 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은 저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배려와 존중을, 정말 고쳐야하고 비판해야하는 일에는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실천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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