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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기쌤 Mar 09. 2024

처음의 설렘과 서투름 사이에서, 그리고 밀당(?)

무엇이든 처음이었던 그때, 좋은 기억과 힘든 기억이 모두 있었던 그때

 2015년 2월의 추운 바람을 피한 따뜻한 난로가 있는 교무실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금도 난 상당히 어리바리하게 교직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그 때는 갓 1년차 딱지를 땐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확실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같이 교무실에서 계셨던 한 선배 선생님께서 담임을 맡게 된다면 어느 학년을 맡아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난 그 때까지만 해도 생각하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그것이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였는지, 아직 맡아볼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기억 상으로는, “제가 어느 반을 고를 입장이 되나요, 저보다 잘 하시는 선생님께서 하셔야죠. 그리고 맡는 데로 해봐야죠.”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복도에서 마주친 선배 선생님께서 다시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선생님께서 폰을 꺼내시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지금의 2학년 여학생이었다. 선생님께서 2학년이 되면 어느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시자, 전화거신 선생님께서 하시면 좋겠다고 하였다. 선생님께서 다시, “그럼, 나말고는 누가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보시자, 그 여학생이 “진현국 선생님께서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기쁨과 함께, 아, 올해는 몇 학년일지 모르겠지만, 담임을 맡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심장이 조금씩 떨리는 순간이 이따금씩 오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을 잘 다룰 수 있을까?’, ‘이런 저런 담임업무를 잘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이 날 좋아해주고 따라올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등등을 생각할 때마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걱정 80%, 혼란스러움 10%, 정신없음 5%, 기대감 5%였지 싶다. 조금 과장된 마음이긴 하다.

  아무튼 여러 과정을 거쳐, 난 한 해 동안 2학년 담임을 맡기로 되었다. 그 동안 나는 선배, 동기 선생님들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인터넷까지 찾아보며 담임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업무를 해나가는지 알려고 노력해나갔다. 그래봤자 감은 전혀 잡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서론 치고는 너무 길었다. 그 만큼 지금 2학년 아이들 담임을 맡기 전의 시간이 나에게는 긴장과 설렘의 중요한 기점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입학 및 개학식 날까지 2학년 아이들에게 내가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건 전혀 말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개학식장에서 각 담임이 호명될 때까지 아이들은 날 만나기만 하면 누가 자기네들 담임 선생님이 되는지 질문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난 스스로 재미있으면서도, 내가 2학년 아이들 담임이 되었다는 사실이 개학식장에서 알려지면 어떻게들 반응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탄식을 할지, 야유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생각을 아이들이 불식시켜주지 뭔가. 내가 2학년 담임으로 불리자마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불러주었다.(아마, 이 기억은 평생을 가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 난 깜짝 놀랐었다. 고맙기도 하면서. 그러나 이내 걱정도 같이 들었다. 아이들은 저렇게나 환호성을 질러주는데, 내가 같이 생활하면서 그 환호성을 실망감으로 안겨주면 어쩌나 하는. 아, 이건 지금도 나의 담임생활을 지탱해주는 고민이자 생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난 나의 교직생활 중 첫 담임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서투름과 설렘, 그리고 걱정의 사이에 서게 되었다. 사실 서투름과 설렘은 시간이 갈수록 노하우가 쌓이면서 줄어들지 않겠나 싶긴 하다. 문제는 걱정은 날로 늘기 쉽다는 것이고, 여기에 아이들과의 밀당(?)이 끼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난 밀당(?)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도. 사람은 서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게 내 마음대로 된다던가. 이건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나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아무튼 아이들도, 나도 기대감을 가지고 학급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난 최대한 아이들에게 권위적인 선생님으로 비쳐지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학급 일을 결정하는 학급이 되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고, 특히 아이들이 웃는 얼굴로 학교생활을 하게 돕는 것은 아마도 교직생활 평생을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목표로만 올해 담임생활을 평가하면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에는 회의감이 든다.


  아, 이러다가는 내가 무척이나 아이들만 끔찍이 생각하고 위하는 사람으로 좋은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 솔직히 이야기해야겠다. 지나고 보니, 난 생각보다 잔소리꾼이었다. 아이들의 자율성을 매우 인정해주는 마음씨인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못했던 거다. 이건 아이들과 신경전도 벌이고, 내가 학급 분위기를 뒤집어 엎기도 하고, 아이들의 잘잘못을 여과 없이 이야기할 때 완벽히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물론 최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애는 썼고,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에 그러기도 하였지만 내 욕심에, 그리고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일도 여럿 있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물건 던지지 않기, 욕설하지 않기, 비하하는 표현하지 않기, 주변 정리 잘하기, 지각하지 않기 등을 아이들과 약속하며 나름의 학급에서 통용되는 규칙으로 삼았다. 규칙이 생겼으니, 반응도 있었다. 나름 지키려고 노력하는 쪽과 이따금 지키지 않는 쪽이라는 양 갈래가 생겼다. 밀당(?)의 시작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고 할까. 지키게 하고 싶은 자와 그 사이에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는 아이들 간의 밀당. 꼭 이분법으로 나뉜다고 볼 수 없고, 이 문제에서만 밀당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일들이 여기서 비롯된 것 같다.


  시시콜콜하게 각 사례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이들의 프라이버시도 있고, 완벽하게 상황을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고 싶다. 다만, 학교생활 대부분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아이들이었고, 상처를 주는 것도 아이들이었고, 감동을 주는 것도 아이들이었다.(글을 쓰는 요즘 일로 이야기하자면, 부족한 나에게 생일을 챙겨주는 아이들, 마음 아픈 말을 나에게 하는 아이들, 각종 사건이 있을 때마다 힘내라고 해주는 아이들[이 아이들은 내 글을 보면 자신인지 알지도 모르겠다.] 모두 같은 우리 2학년 아이들이다.) 그만큼의 비중은 아니었겠지만, 어느 정도 기쁨과 슬픔 그리고 감동도 나로 인해서 아이들에게 전해진 부분도 있지 않았겠나 싶다. 이것이 서로 간에 가지는 밀당(?)의 영향이랄까. 

  11월인 지금, 최근의 일만 이야기해보고 싶다. 내가 담임으로서 1년 동안 신경을 쓰게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일 줄은 몰랐다. 바로, 지각하는 아이들과 상대적으로 많은 수의 아픈 아이들이었다. 아픈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프기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 조퇴와 결석이라는 부분 때문이었지만, 지각문제는 나와 아이들의 밀당의 극치였다고 할 수 있다. 11월의 언젠가 3,4명씩 한꺼번에 지각을 하는 날이 있었다. 그 날 아침에 나 스스로의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당사자들을 아침부터 혼내게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 속상해하고 많이 미안아 했다. 혼을 내는 것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 자체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음이 아프고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아이들도 아침부터 학교에 와서 힘이 들 텐데, 그리고 아침에 집에서도 여러 기분 좋지 않은 일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오자마자 담임이 화를 내는 걸 보면 얼마나 또 힘이 들까하는……. 적어도 아침에는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싫은 말보다는 좋은 말을 해주기로 학기 초에 그렇게 다짐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안타까움도 함께.


  어찌 보면 욕심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많은 것 같기도 한 담임과 함께 그래도 큰 탈 없이 생활해주고 있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1년 동안 생활하면서 나도 아이들에게 많은 힘을 받았다면, 아이들도 나로 인해서 기쁨과 힘을 받았기를 아이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바라고 있다. 마지막으로 올해 가장 슬럼프에 빠졌던 7월에 썼던 글을 여기에도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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