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

by chldew

이전에 말했듯 그렇게까지 단맛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입에 달라붙는 단맛은 단내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입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당장 고된 일들을 계속한 뒤에 나오는 것도 단내 아니던가. 실제로 명절의 떡방앗간에서 자주 들었던 말들 중 하나가 단내 안 나냐였다. 그래서 고진감래라는 말이 나온 건가 싶은 생각도 했다. 원래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뜻이지만…… 이런 생각들은 항상 떠올랐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에는 끝남을 알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런 생각들은 어째서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단맛과 쓴맛의 관계도 이와 비슷했다. 쓴맛이 오래가면 단맛이 떠오르듯, 단맛이 오래가면 어느 순간부터 쓴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힘들수록 뭔가를 먹기가 더 싫었던 걸까? 자전거 여행에서는 짐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자전거처럼 체력 위주의 여행을 떠날 때면 최소한의 짐을 준비하는 게 중요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더더욱. 보디빌더처럼 전신이 근육질이라면 모를까.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나름 운동은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바라고 운동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싶었을 뿐이니까. 너무 힘든 나머지.


지금의 고독이나 지나왔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고 싶었다. 모든 여행에는 나름의 종착지가 있었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고. 그 끝에 도착했냐 아니냐의 문제일 뿐……. 그렇다면 나는 어디쯤 온 걸까. 그걸 알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안다는 말은 대중매체에서 할 법한 말이기에. 간혹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난 아니었다. 아직 스스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들도 많았고 설령 알고 있다 해도 극히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어떤 사물이라 생각하는지 말했던 걸 생각하면 더더욱.


거대한 양파로 만든 lim⁡ n→∞인 n면체. 이때, 이 양파는 어떻게 될지를 당시에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까도 까도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칼로 표면을 마구잡이로 잘랐지만…… 여전히 양파의 속은 알 길이 없다. 더 이상 양파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양파를 자르는지 새로운 다면체를 만드는지 의문이 들리라. 무한한 면들을 만들다 보면 결국에는 구체가 되는 거 아니냐 생각도 들고. 크기가 작아지냐 아니냐의 문제만이 남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말했던 건 왜였을까. 굳이 이렇게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 질문의 답은 평생 의문으로 남으리라. 죽을 때나 되어서야 알면 다행일지도 모르고. 그렇게, 단맛과 쓴맛의 연속은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걸을 뿐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 고생의 끝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여정 또한 나를 이루는 수많은 면들 중 하나가 될 것 같고. 단지 그 면이 얼마나 넓어지냐의 문제일 뿐일까? 그렇다면 그 면은 얼마나 넓어질까. 그것 또한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역시 걸을 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시포스처럼 송곳산에서 바위를 굴리는 것도 아니고.


눈앞에 있는 송악산 또한 송곳산이 아니었다. 문구점에서나 볼 법한 송곳처럼 하얗지도 않았고. 한라산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이름이 있는 산인지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알고 보니 그렇게까지 높은 곳도 아니었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갈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과거 자전거 전용 신발로도 춘천의 산도 오른 적이 있었기에 더더욱.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경치가 제법 괜찮은 편이란다. 그걸 증명하듯 근처 편의점 옆에는 송악산 인증센터가 있었다. 어쩌다 정한 오늘의 마지막 인증센터. 그 사이 이전에 생각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전거로 입문하도록 만든 친구였지만, 정작 본인은 멀리 떠난 적이 없었다. 끽해야 경기도 정도였고. 대신 사진 촬영은 좋아해서 종종 사진을 찍는다나. 단지 그 사진이 스냅숏이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그래서 한 번은 내게 물은 적도 있었다. 왜 자전거로 여행을 떠나냐고. 그렇게 여행이 힘든데도. 세상을 둘러보기에는 이 정도 속도도 괜찮았다는 게 당시에 내린 답이었다. 힘든 걸 알면서도. 그렇지만 그런 힘든 시간 속에도 중간중간 달달함은 있었다. 동물들이나 환경 등등. 그 모든 것들을 차와 비행기로 보기에는 너무 빨랐다. 걸음은 느리고.


그렇게 간단하게 통화를 한 뒤에야 숙소로 갈 수 있었다. 그전까지는 자전거를 몰기 좀 어려웠으니까. 자동차도 전화 통화하다 사고가 나기 쉬운데 자전거는 오죽하겠는가. 숙소가 그리 멀지 않으니 망정이었지만. 대신 조금 기다리기는 해야 했다. 잠깐 외출해서 그렇다나. 실제로도 빨리 돌아왔고.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냉수였다. 찬바람도 그렇고. 9월인데도 생각보다 햇살이 강렬했으니 더더욱 그랬으리라. 실제로도 샤워를 하자 약하게나마 화끈거렸고. 그렇게 첫날을 보낼 생각이었다. 한 통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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