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으로 바라본 BTS 아리랑

삼국유사 속 용들과 BTS, 김유정의 아리랑과 BTS 아리랑


서른다섯 해 전, 영문학도였던 나는 유럽의 도시들을 떠돌며 문화의 힘에 압도되었다. 성당의 천장화와 거리의 음악, 박물관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품었다. 왜 우리는 우리 문화의 힘을 이토록 스스로 믿지 못하는가. 그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한국문화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바깥에서 마주한 거대한 문화의 파도는 오히려 나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스물다섯 해 전, 두 아들을 키우던 시절 나는 박사논문 주제로 김유정을 선택했다. 솔직히 말하면 단명했고, 작품 수가 많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우선이었다. 육아와 연구를 병행해야 했던 시간 속에서, 감당 가능한 분량은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어느새 나의 오래된 부채가 되었다. 나는 그를 전략적으로 택했지만, 그는 나를 진심으로 붙들었다. 그 이후로 단 한 해도 김유정을 놓아본 적이 없다. 2023년 김유정학술상을 받던 날, 나는 상보다도 그 오랜 시간의 동행이 떠올랐다. 미안함에서 시작된 연구가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김유정은 문화의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나를 깨웠다. 난타를 연구할 때에도, 도깨비를 분석할 때에도, 나는 그의 소설 속 돌연한 사건 전개와 마주했다. 웃음과 비극이 한순간에 뒤집히는 그 그로테스크한 결말들은, 몸을 비틀어 리듬을 만드는 비보이 연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메타버스를 연구할 때에는 그의 ‘실내 마을’을 떠올렸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반복되는 관계와 놀이, 그것은 디지털 공간 속 공동체의 원형처럼 보였다. 그리고 지금, BTS를 만나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김유정의 아리랑 앞에 선다.


작년, 케데헌을 보며 나는 잠시 망연자실했다. 한국 신화를 스무 해 넘게 연구하고 가르쳤지만, 내가 만들어내지 못한 문화적 파급력이 화면 밖에서 거대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2012년, 학회 총무이사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아리랑 학술대회를 준비하던 시간. 학술지의 문장들 속에서 우리는 아리랑의 구조와 변주를 치열하게 토론했다. 그 아리랑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 다시 울린다. BTS의 아리랑 귀환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오래전 내가 붙들었던 질문을 다시 깨우는 사건이다.


김유정의 소설 속 아리랑은 마을의 숨결이었다. 삶의 고단함을 견디게 하는 낮은 리듬이었다. 오늘날 무대 위의 아리랑은 집단의 떼창으로 증폭된다. 개인의 한이 세계의 공명으로 번져간다. 나는 그 사이에 놓인 다리를 보고 싶다. 문학에서 군무로, 민요에서 글로벌 퍼포먼스로 이어지는 길을 멋지게 그려보고 싶다.


한때 나는 부채의식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연구는 시대와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을. 김구가 『나의 소원』에서 말한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가, 이제는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나는 그 흐름 한가운데에서 문학과 신화, 노래와 아이돌을 잇는 연구자로 서 있다.

유튜브 신화노트에서 김유정의 아리랑을 노래로 만든 삼국유사 용 이미지

BTS의 귀환은 경복궁의 근정문, 흥례문, 광화문, 월대, 6조 마당 등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왕이 걸었던 그 길들을 팝의 왕들이 걸어 나온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튜브라는 것을 만들었다. 거의 100일이 되어 간다. 그간 100편이 넘는 영상을 만들었다. 물론 시청률은 별루이다. 하지만 만드는 시간은 늘 즐겁다. 그중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삼국유사의 이야기이고, 용과 관련된 서사이다. 나는 삼국유사의 용들 중 7개의 용을 서울로 멋지게 불러들이고 있다. 이미 경회루 호수에 문무왕의 용이 밀양 아리랑과 함께 도착했고, 강원도 수로 부인을 데려갔던 용은 정선 아리랑과 함께 근정전 기와 처마에 들어갔다. 이제 5개의 용들이 하나씩 이야기를 품으면서 각각의 아리랑을 동반하고 서울 경복궁으로 입성할 것이다.


앞으로 나는 유튜브와 브런치에서 김유정과 『삼국유사』, BTS와 아리랑을 다시 연결해 보려 한다.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화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몸을 입고 돌아올 뿐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김유정은 여전히 나를 깨운다. 이 황당한 여정에 함께하실 분들이 있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