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따라가다 갑자기 아미?

Bts 아리랑을 기다리며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등과 함께 올라온 세 용/유튜브신화문학노트 용 이야기



나는 요새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미인가요?”
그렇다고 대답한다.
조금 웃으면서 덧붙인다.
“아미 엄마입니다.”
두 아들이 군대에 있다.
군복을 입고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
그래서 나는 무대 위에서 절도 있게 춤추는 청년들을 보면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BTS의 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단순한 팬의 설렘이 아니라,
군무처럼 춤추는 청년들을 향한 엄마의 시선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BTS의 아리랑 무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 기다림은 단순한 팬심이 아니다.
김유정의 아리랑을 오래 붙들고 살아온 사람의 설렘이다.
김유정에게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놀이였다.
울지 않기 위해 웃으며 부르는 노래,
떠나야 할 때를 알면서도 흥얼거리는 가락,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더 크게 부르는 타령.
나는 박사논문에서 김유정의 상상력을 ‘놀이 상상력’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놀이로 풀어낸 김유정이 테마이다.
그의 인물들은 언제나 한판 벌인다.
사기와 농담, 허세와 체면, 울분과 체념이 뒤섞인 마당.
그 한가운데 아리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김유정의 아리랑들을 모으고 있다.
『만무방』의 둑길에서 흘러나오던 가락, 『떡』의 체면을 감싸던 타령, 『안해』의 춘천 바람을 머금은 노래.
그것들을 한데 묶어 강원도 아리랑 하나를 다시 빚어보고 있다.
정통을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김유정이 그랬듯, 나도 한판 놀아보려는 것이다.
상상 속에서 일곱 용을 불러낸다.
문무왕의 용, 수로부인의 용, 선묘 낭자의 용….
이미 나의 이야기 속에서 서울을 향해 날아오던 그 용들이다.
이제 그들이 산맥과 바다를 넘어 모인다.
아리랑이 울리면, 용들은 흩어지지 않고 합을 맞춘다.
마치 무대 위의 아이돌처럼, 각자의 빛을 내면서도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김유정의 아리랑이 둑길의 노래였다면,
BTS의 아리랑은 세계를 향한 무대의 노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둘 사이에 단절을 느끼지 않는다.
반복되는 후렴 위에 새로운 사설을 얹는 구조,
전통을 딛고 세계로 확장되는 몸짓,
공동체의 정서를 리듬으로 재조합하는 힘.
그것은 어쩌면 같은 놀이의 계보다.
박사논문으로 김유정을 붙들었던 나는
이제 그 아리랑을 무대 위로 올려본다.
아미 엄마의 마음으로,
연구자의 상상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한판 놀고 싶은 사람의 기쁨으로.
아리랑은 원래 그런 노래였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몸으로 이어가는 노래.
그래서 나는 오늘도 대답한다.
“네, 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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