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안해」 속 아리랑, 자존감을 깨우다

Bts 아리랑 세계와 연결해서

유튜브 《신화문학노트》 김유정 《안해》 영상 속에서


예전에 BTS가 부르는 아리랑 가사를 들으면 흥미로운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가락은 익숙하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경기아리랑의 구조이고,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는 정선아리랑의 후렴이다. 두 아리랑이 섞여 있다. 그런데 가사 한 구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전통 아리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떠나는 님을 원망하는 정서다. 한(恨)의 정서가 짙다.
그런데 BTS 아리랑에서는 이렇게 바뀐다.
“날 다려가거라 날 다려가거라
무정한 우리 님아 날 다려가거라.”
여기에는 원망 대신 묘한 당당함이 들어 있다. 떠나가는 님을 저주하는 대신, 차라리 “날 데려가라”고 말한다. 슬픔 속에서도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현대적인 자존감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이런 정서는 이미 오래전에 한 소설 속에도 등장한다. 바로 김유정의 작품 「안해」다.
이 소설에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묻는다.
“내 얼굴이 그래도 그렇게 숭업진 않지?”
남편은 대답하기 곤란하다. 그래서 피식 웃어버린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밀어붙인다.
“이봐! 내 얼굴이 요즘 좀 나가지 않아?”
남편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그래 좀 난 것 같다.”
그 말을 듣자 아내는 팔을 꼬집고 바싹 들이대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이 장면은 김유정 소설 특유의 해학이 살아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아내는 갑자기 이렇게 당당해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들을 낳았기 때문이다.
조선 농촌 사회에서 아들을 낳은 며느리는 집안에서의 위치가 달라진다. 눈치를 보던 사람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아내는 남편에게 장난스럽게 묻고, 농담을 던지고, 때로는 남편을 밀어붙인다.
남편의 속마음은 복잡하다. 그는 속으로 생각한다.
‘계집이 얼굴이 이쁘면 제 값 다 하니까. 낯짝 더러운 것이 나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다.’
김유정 특유의 블랙유머다. 남편은 여전히 투덜거리지만, 이미 상황의 주도권은 아내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자존감의 변화다. 아내는 갑자기 예뻐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래서 “내 얼굴이 좀 나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노래다. 김유정의 소설 속 인물들은 힘들 때 종종 노래를 부른다. 농사를 지으며, 술을 마시며, 서로를 놀리며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슬픔의 노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을 버티는 노래다.
아리랑도 그렇다.
아리랑은 오래도록 이별과 한의 노래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장난을 치면서, 서로를 놀리면서도 아리랑을 불렀다. 슬픔만의 노래가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하는 노래였다.
그래서 BTS가 부른 아리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 “날 다려가거라”로 바뀐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아리랑의 정서도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예전 아리랑이 떠난 님을 원망하는 노래였다면, 지금의 아리랑은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 노래다.
김유정의 「안해」 속 아내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당당하게 묻는다.
“내 얼굴이 요즘 좀 나가지 않아?”
그 질문은 외모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제 좀 괜찮은 사람 아니냐?”
그래서 김유정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리랑은 슬픔의 노래이면서도 동시에 자존감의 노래였는지도 모른다.
힘들어도 노래를 부르고, 가난해도 웃고, 서로 놀리며 버티는 사람들. 김유정이 그려낸 강원도 농촌의 사람들도, 오늘날 세계 무대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BTS도 어쩌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셈이다.
결국 아리랑은 한의 노래이기 이전에, 사람을 다시 일어나게 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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