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솥》: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 김유정에서 BTS 아리랑까지

유튜브 신화문학노트에서 제작한 김유정 《솥》



김유정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특히 그의 작품 속에는 아리랑의 정서가 깊이 스며 있다. 슬픔과 웃음이 동시에 섞인 그 노래의 기운이 김유정의 인물들과 너무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솥」의 근식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어느 날 문득 한량 같은 공상을 한다. 농민회 총회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동네 청년들도 몽땅 끌려가 버렸으니 오늘은 술 한 병 차지하고 노래나 부르며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그의 마음은 이미 세상일을 잠시 잊은 사람의 마음이다. 술상 하나 들어오고 술병이 굴러들어 오면 그저 한 곡 노래나 부르며 세상을 잊고 싶다.
그 순간 근식의 마음속에는 아마도 이런 노래가 흐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의 이 구절은 묘하다. 슬픈 이별의 노래 같으면서도 어딘가 장난스럽다. 떠나는 사람을 원망하지만, 동시에 그 원망을 노래로 웃어넘기는 한국식 농담이 숨어 있다. 그래서 아리랑은 울음의 노래이면서도 동시에 놀이의 노래다.
근식 역시 그렇다. 그는 현실의 가난과 살림을 잠시 잊고 계숙을 따라 떠돌며 살면 굶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한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을 잠시 잊고, 술과 노래와 떠돌이 삶을 꿈꾸는 것이다. 마치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어가는 떠돌이 한량처럼 말이다.
그러나 김유정의 세계에서 그런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근식의 공상은 금세 깨지고 만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아내다. 산모퉁이에서 헐레벌떡 달려온 아내가 소리를 지른다.
“왜 남의 솥을 빼가는 거야?”
순간 근식의 한량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는 한순간에 도둑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동네 사람들도 눈을 비비며 구경을 나온다. 근식은 얼굴이 붉어지고 아내는 눈물을 터뜨린다. 결국 그는 아내를 달래며 말한다.
“아니야 글쎄, 우리 것이 아니라니까.”
이 장면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리랑의 그 가사가 떠오른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근식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한량의 길을 십 리도 가지 못한다. 솥을 들고 언덕을 내려가기도 전에 아내에게 붙잡혀 버린다. 그래서 이 장면은 슬프면서도 웃기다. 김유정 문학이 가진 독특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난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의 삶 속에서도 어딘가 노래 같은 리듬이 흐른다. 힘들면 노래하고, 답답하면 술을 마시고, 잠깐 꿈을 꾸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아리랑의 정서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세계 무대에서 울려 퍼진 BTS의 아리랑 공연을 보면 그 감각을 다시 느끼게 된다. BTS가 부른 아리랑은 전통의 가락 위에 현대적인 리듬을 얹은 노래다. 그러나 그 노래의 중심에는 여전히 같은 정서가 흐른다. 떠남과 그리움, 그리고 그것을 노래로 견디는 힘이다.
BTS의 아리랑에서는 가사가 이렇게 변한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
날 데려가거라.”
원망의 노래가 아니라 함께 가자는 노래로 바뀐다. 슬픔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김유정의 소설 속 인물들이 노래를 통해 잠시 삶의 무게를 잊었던 것처럼, 오늘의 K-pop도 노래를 통해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만약 근식이 오늘날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솥 대신 휴대폰을 들고 BTS 아리랑을 틀어 놓고 노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잠깐 한량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아마 같았을 것이다.
십리도 못 가서 아내에게 붙잡히는 것.
그렇기에 김유정의 이야기와 BTS의 아리랑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어져 있다.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잠깐 놀고 싶어 하고, 잠깐 꿈꾸고 싶어 하며, 그 마음을 노래로 풀어낸다.
그래서 아리랑은 오래 살아남는다.
김유정의 소설 속에서, 오늘의 K-pop 무대 위에서도.

우리의 정서를 담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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