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 아래 떠나는 사람들의 노래
유튜브 신화문학노트 속 《산골나그네》이미지 중에서
김유정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 분명 가난하고 쓸쓸한 이야기인데도 어디선가 노랫가락이 들리는 것 같다. 바로 아리랑의 정서 때문이다. 아리랑은 떠나는 사람의 노래이면서도 동시에 남겨진 사람의 노래다. 원망과 체념, 그리고 애틋함이 함께 흐르는 노래다. 김유정의 「산골나그네」 역시 바로 그런 감정 위에 놓여 있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도주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의 정서가 은근하게 흐르고 있다.
이야기는 깊은 산골의 밤에서 시작된다.
할머니는 어느 날 밤 며느리의 베개 밑에서 은비녀 하나를 발견한다. 달빛에 번쩍이는 그 비녀는 가난한 산골에서 보기 힘든 귀한 물건이다. 할머니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든다. 만약 며느리가 도망갈 생각이었다면 이런 물건을 두고 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생각이 오히려 불안한 예감을 만든다.
할머니는 곧 아들 덕돌이를 깨운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한밤의 산길을 따라 며느리를 찾으러 나선다.
그들이 향한 곳은 마을에서도 외진 냇가의 물방앗간이다. 떠돌이들이 잠시 몸을 눕히는 곳, 삶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그곳으로 갔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순간 독자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떠남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미 느끼게 된다.
마치 아리랑 가사처럼 말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떠나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모두 슬픈 이야기다.
물방앗간 안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거적을 덮고 누워 있는 병든 거지, 바로 며느리의 남편이다. 그는 이미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이다. 기침은 멈추지 않고 몸은 쇠약하다.
그때 한 여자가 그에게 다가온다.
바로 술집 며느리다.
그녀는 거지를 깨운다.
“여보, 자우? 얼른 일어나게유.”
그리고 그에게 갓 결혼한 새신랑의 겹옷까지 입혀 준다.
두 사람은 함께 도망칠 준비를 한다.
이 장면이 「산골나그네」에서 가장 묘한 장면이다.
며느리는 왜 병든 거지를 데리고 떠나는 것일까.
사랑 때문일까.
연민 때문일까.
아니면 이 산골에서 벗어나고 싶은 절망 때문일까.
김유정은 여기에 대해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김유정 소설의 인물들은 종종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노래 속 인물처럼 움직인다.
아리랑이 그렇다.
왜 떠나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떠날 뿐이다.
며느리와 거지는 밤길을 따라 떠난다.
그러나 산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멀리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어디 있소!”
덕돌이의 목소리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며느리는 잠시 멈춘다.
하지만 곧 거지의 손목을 잡아끈다.
“얼른 좀 오게유!”
이 장면은 마치 아리랑의 한 장면 같다.
떠나는 사람과
뒤쫓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어쩔 수 없는 거리.
아리랑에서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원망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애틋한 존재다. 떠난다고 해서 완전히 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골나그네」에서도 마찬가지다.
며느리는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지만, 독자는 그녀를 미워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가난과 삶의 막다른 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떠남은 배신이라기보다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탈출에 가깝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명확한 악인이 없다.
할머니도 아들도 도망치는 며느리도 악인이 아니다.
덕돌이는 아내를 찾는 남편일 뿐이다.
며느리 역시 악인이 아니다.
그녀는 가난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들병이를 자처하고 거지 남편을 구하려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이 <산골나그네>의 이야기는 선과 악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외로움이 부딪히는 이야기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더욱 쓸쓸하다.
할머니와 덕돌이는 텅 빈 산길에 서 있고
며느리와 거지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 알 수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아리랑의 정서를 떠올리게 된다.
아리랑은 원망과 연민이 동시에 흐르는 노래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완전히 미워하지 못하는 노래다.
김유정의 「산골나그네」도 그렇다.
이 작품은 떠난 사람을 비난하지도 않고
남겨진 사람을 바보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저 달빛 아래 인간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한 곡의 아리랑처럼 들린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남는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산골의 나그네일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김유정은 인간의 삶이
서로를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서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둠을 건너가려는 아리랑 같은 여정이라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