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경제신문을 읽다가 이상한 기사를 발견했다. 5월 11일 IMF가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를 발간했는데,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非기축 통화국의 평균을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다른 유력 일간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렸다. 1면에서 비중 있게 다룬 주요 신문도 있고, 아래와 같이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함께 기사를 내보낸 신문도 있었다.
출처 : 조선일보
이상했던 점은 IMF가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을 구분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구분을 한다는 것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IMF에 들어가 자료를 확인해 봐야 했다. 관련 해외 기사들도 검색해 봤다.
짜맞추기식 억지 뉴스였다. 일단, 출처가 된 IMF의 「재정점검보고서」(Fiscal Monitor)는 5월 11일이 아니라 약 3주 전인 4월 23일에 발간된 것이었다. 이 자료에는 선진국과 개도국, 저소득 국가 등을 구분하고 각각의 재정 건전성 지표가 나온다. 하지만,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으로 구분한 내용은 없었다.
기축통화는 대개 무역에서 기준이 되는 통화를 의미한다. 혹자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준비자산으로서 선호하는 통화를 기축통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기축통화와 비기축통화의 공식적인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문 기사에는 선진국 통화 중 우리가 많이 들어 익숙한 달러, 유로, 파운드, 엔, 호주 달러,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등을 기축통화로 구분하고 나머지 통화는 비기축통화라고 “임의로” 가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2022년 기준 세계 무역과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주요 통화의 비중을 살펴보면, 호주 달러나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을 기축통화로 볼 근거는 없다.
< 외환보유고와 무역에서 차지하는 통화의 비중 (2022년말 기준) >
출처 : IMF, BIS
뭐 아무래도 좋다. 신문에 나온 대로 기축통화국과 비기축통화국을 나눌 수 있다고 치자. 상상의 질서는 만들기 나름이니까. 그렇더라도 한국의 재정 건전성이 마치 위험수위에 다다른 것처럼 쓴 주요 신문의 기사들은 근거가 부족하거나 왜곡이 심하다. 2025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재정수지 예측치는 약 –0.4%다. 노르웨이(+13.2%)처럼 대규모의 국부 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는 산유국이나, 덴마크(+1.2%)처럼 세금이 많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매우 낮은 축에 속한다. 심지어 통화의 신뢰도가 한국보다 훨씬 낮다고 볼 수 있는 개도국(-6.3%)이나 저소득 국가(-3.5%)보다도 한국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크게 낮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54.5%)도 선진국 대비 평균 이하 수준이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나타내는 GDP 대비 국가순부채(=금융부채-금융자산)도 노르웨이와 덴마크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낮은 9.3%다. 결론적으로 GDP 대비 재정수지, 국가부채, 국가순부채 등을 모두 감안하면 한국의 재정 건전성은 우려할 수준이 전혀 아니다.
< 세계 각국의 주요 재정 건전성 지표 (2025년 예측치 기준) >
출처 : IMF Fiscal Monitor(2025.4.23.)
재정지출은 장단점이 있다. 재정지출은 공급보다는 수요를 늘리는 방향으로 사용되는데, 재정을 통한 수요 진작은 대개 일시적 효과에 그친다. 즉 불필요한 재정지출은 국가부채 증가와 물가 상승만 유발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경기가 부진할 때는 재정지출로 총수요를 늘려주어야만 공급능력이 훼손되지 않는다. 공장과 상점은 일단 문을 닫으면, 다시 가동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따라서 경제가 관성의 법칙을 잃지 않도록 재정지출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재정지출은 공급 부문에도 투입될 수 있다. 특히 민간 기업이 적극 투자하지 않으려 하는 부문에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산업 생산성과 공급능력을 개선할 수 있다. 다만, 정부 부문은 민간 부문에 비해 혁신이 부족하고 책임성이 약해 낭비될 위험이 있다. 생산성 낮은 곳에 과도하게 재정이 투입되면 “재정지출 증가 → 국가(순)부채 증가”를 통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재정지출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의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고, 그의 퇴임 이후에도 보호무역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게다가 한국은 과도한 부채 문제 때문에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수출과 내수가 모두 어렵다면, 이제 재정지출의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최소화하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의지다.
결론적으로 재정지출을 다짜고짜 위험하게 보는 태도야말로 위험하다. 글로벌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좀 더 늘어나도 괜찮다. GDP 대비 재정수지와 국가순부채 측면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나라다. 재정을 잘 활용하면, 재정지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가부채는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 분모인 GDP가 증가하고 과세 기반이 넓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