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일요일 저녁 대선 후보 토론을 보다가 이준석 후보가 ‘호텔경제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보았다. 호텔경제학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찾아보니 2017년 2월에 이재명 후보가 주장했다가 여기저기서 비판받았던 적이 있었던 일종의 경제순환론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후보가 5월 16일에 군산 유세 중 이 경제순환론을 다시 꺼내 들었고 이준석 후보가 어제 이를 비판했던 것이었다.
아래 그림은 2017년 2월 이재명 후보의 홈페이지에 나왔던 호텔경제학에 대한 개념도이다. 이재명 후보는 군산 유세에서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순환론에 대해 설명하였다. “한 여행객이 호텔에 10만원의 예약금을 지불하고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가구점 침대 외상값을 갚는다. 가구점 주인은 치킨집에서 치킨을 사 먹는다. 치킨집 주인은 문방구에서 물품을 구입한다. 문방구 주인은 호텔에 빚을 갚는다. 이후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10만 원을 환불받아 떠난다..”
이에 대해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가 그린 그림을 보면 돈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소비성향이 1로 도는데 무한동력이냐”라고 비판했고, 이재명 후보는 “(호텔경제학은) 경제의 순환이 필요하다는 걸 극단적으로 단순화해서 설명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재명 후보의 설명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림은 단순히 경제 순환론의 범위를 넘어 기본소득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 같았고, 과거의 비판도 기본소득에 대한 문제 제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이 그림에 대해 어떤 문제가 제기됐을까. 여기저기 찾아봤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설득력 있는 문제 제기는 찾을 수 없었다. 하여 그림에 대한 내 생각을 먼저 정리한 뒤 혹시라도 나를 아는 사람이 비판을 제기하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 위 그림에 문제가 없는 이유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첫째, 이준석 후보의 말대로 개인의 소비성향은 1보다 작지만, 그래도 소비성향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여전히 시너지 효과(소위 승수효과)는 발생한다. 만일 소비성향이 1이라면 고객이 단순히 10만원 예약했다가 취소한 것만으로도 가구점, 치킨집, 문방구에서는 각각 10만원씩 모두 30만원의 매출액(재료비가 모두 합쳐서 5만원이라면 GDP는 25만원)이 발생한다. 승수효과가 0.8이라면 매출액의 20%는 소비하지 않고 저축이라는 형식으로 축적되겠지만, 그래도 10만원(호텔, 나중에 예약 취소)->8만원(가구점)->6.4만원(치킨집)->5.1만원(문방구) 등으로 29만 5천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나중에 10만원의 호텔 예약이 취소되더라도 여전히 19.5만원의 매출은 유효하다. 이런 승수효과의 원리를 이용하면, 소득이 적어서 저축 여력이 크지 않은, 즉 소비성향이 높은 저소득 계층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기본소득보다 GDP가 더 많이 증가한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GDP가 증가하면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도 증가할 수 있다.
둘째, 경제는 관성의 법칙이 중요하다. 가구점이나 치킨점 같은 서민경제 생태계, 또는 지역경제에 형성된 공급망(supply chain)이 사라지면 그동안 투자됐던 돈은 회수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상점이나 공장이 일단 문을 닫으면, 다시 문을 여는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상점 주인이나 공장 직원들도 소비자이므로 당연히 장기간 소비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얘기인데, 호텔경제학은 돈의 원리를 아주 정확하게 설명한다. 만일 호텔 예약자를 네이버 같은 플랫폼 사업자라 가정하고, 호텔, 가구점, 치킨집, 문방구를 네이버에 입점한 중소 사업자들이라고 가정을 조금 바꿔 보자. 어느 날 네이버의 이해진 회장이 네이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네이버 상품권을 호텔에 선불로 주면서 한 달 후 호텔을 사용하게 해 달라고 예약했다. 네이버 상품권을 받은 호텔은 네이버 가맹점인 가구점에 침대를 주문하면서 상품권을 사용하였고, 가구점은 이 상품권을 사용하여 치킨 가맹점에서 치킨을 주문하였다. 치킨집은 문방구 가맹점에서 문방구를 10만원어치 주문하고, 10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은 문방구는 호텔에 빌렸던 돈을 네이버 상품권으로 갚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네이버 회장이 바쁜 일이 있다면서 호텔 예약을 취소하고 네이버 상품권을 돌려달라고 했다. 따라서 호텔은 문방구로부터 받은 10만원권 상품권을 네이버 이해진 회장에게 돌려주었다....(이 경우에도 여전히 호텔 예약 취소에도 불구하고 호텔 예약으로 인해 발생한 30만원의 매출액은 유효하다.)
위의 세 번째 사례는 돈을 상품권으로 바꿔서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호텔 예약자를 플랫폼 상품권을 발행하는 플랫폼 회사의 대표로 바꾸었을 뿐이다. 만일 네이버의 경영이 엉망인데, 상품권(네이버 입장에서는 부채)이 너무 많이 발행된다는 소문이 퍼지면, 호텔이나 가구점은 상품권 수령을 거부하고 한국은행권 같은 현금이나 은행예금의 이체를 요구할 것이다. 따라서 네이버 플랫폼이 안정적이라는 가정이 중요하다. 하지만 네이버 플랫폼이 아무리 안정적이라도, 일반적인 돈(지역화폐도 마찬가지)은 네이버 상품권보다 훨씬 강력하다. 네이버 상품권은 되고 돈은 안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자 이제, 호텔경제학의 결론. 중요한 것은 돈이나 상품권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호텔, 가구점, 치킨점, 문방구가 지역 공동체, 또는 플랫폼에서 고객 수요를 창출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 좋은 물건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매출을 유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이다. 지역상품권이든 지역화폐든 네이버 상품권이든 불쏘시개로 잘 활용하면서 경제가 관성의 법칙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경제 생태계를 관리하는 실력, 그리고 극단적인 불안으로 소비성향이 지나치게 낮아지지 않도록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따라서 호텔경제학은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