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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테레지아 은화, 상호주관성, 그리고 국가부채

by 노진호

마리아 테레지아는 1740년부터 1780년 사망할 때까지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였다. 황제의 재임 중 주조됐던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는 그녀의 사망 후 오스트리아 내에서 유통이 중단되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달랐다. 서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순도가 높은 다른 은화보다 높은 시세로 유통되었고 심지어 파운드나 달러화보다도 인기가 높았다. 주조권이 1935년 오스트리아에서 이탈리아로 양도되고, 게다가 1936년을 전후해 독점적 통화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영국, 프랑스, 벨기에까지 은화 주조에 가세했으나 인기는 여전했다.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는 1960~70년대까지 유통되었고, 예멘에서는 1977년까지 공식 통화였다.

통치 정부가 발행한 통화도 아니고, 재료의 가치와도 상관없이 18세기에 만들어진 통화가 20세기 중반까지 국경을 넘어 인기가 지속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그중에는 주화에 담겨 있는 ‘미술적 가치’가 인기의 비결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해석은 경제학적인 범주를 넘어서는 것인데, 그만큼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에 대한 인기는 경제학자들이 풀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뉴턴은 1687년에 만유인력의 법칙이 소개된 책,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판했다. 제목에서 보듯 그는 자연에 내재하는 수학 법칙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뉴턴의 절친이자 영란은행 창립자 중 한 명인 로크는 “금과 은을 비롯한 모든 것에는 지구상의 누구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희소한 금과 은의 무게―영국 통화 파운드는 무게를 재는 척도에서 비롯되었다―가 모든 물건의 가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로크의 생각은 영란은행이 오랫동안 엄격한 금본위제를 유지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로크보다 100년 늦게 태어난 애덤 스미스는 금을 중시하던 당대의 중상주의(重商主義)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모든 물건의 가치는 금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1kg의 아마포 옷감 가격은 노동자 1명이 투입한 노동 시간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자본이 축적되면서 장비가 고도화되고 분업이 활성화될수록 1시간의 노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의 양은 늘어난다. 따라서 자본이 축적될수록 노동의 가치는 상승(해야)한다. 애덤 스미스의 이런 생각은 데이비드 리카도, 마르크스 등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학문이 발전하면서 우주와 경제의 질서에 대한 고전적인 믿음에 균열이 발생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이후 뉴턴의 만유인력은 보편 법칙이 아니라 특수 조건 아래서만 성립하는 방정식으로서 학문적 지위가 낮아졌다. 로크의 기대와 달리 영란은행의 금본위제는 폐지되었고,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설도 많은 비판을 받게 됐다. 예컨대 물건의 가치는 노동 공급이 아니라 소비자의 수요에 영향을 받으며, 노동의 질도 획일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오늘날 많은 나라들은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변동환율제 아래서는 고정된 기준점이 없다. 국가 간 통화가치의 비율(환율)은 항상 변하는데, 국가 간 무역(물건의 이동)과 자본의 이동, 국가 내 임금과 생산성, 물가의 예상 변동치가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환율은 수출입과 자본의 이동, 생산성과 물가 등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 내부도 마찬가지다. 돈은 재정지출과 세금, 은행대출에 의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 명확한 기준점은 알 수 없지만, 생산능력에 비해 과도한 국가부채와 은행대출은 물가를 상승시키고 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국가 내부의 돈의 가치는 다시 국가 외부의 환율과 다른 변수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기대와 심리적인 변화가 변동성을 높인다. 돈의 가치 하락이 무조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작은 변화가 미치는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헤아릴 수 없고, 심리적인 요소가 다방면으로 개입되며, 좋음과 나쁨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통화가치와 환율, 물건과 서비스의 이동, 자본의 이동, 물가, 재정정책, 그리고 국가부채 등은 자연과학자들이 풀고자 했던 우주적 법칙이나 객관성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이 주목했던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마리아 테레지아 은화의 인기 비결도 상호주관적인 관습으로 이해된다.

경제 현상이 복잡해진다고 해서 중점을 두어야 할 경제적 규범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250년 전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National Wealth)에서 진정한 국부는 무역을 통해 축적된 귀금속이나 부동산처럼 쌓아두는 것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편익을 증진시키는 물건을 매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넥서스’에서 사회적 격차의 확대는 포퓰리즘을 초래하고, 포퓰리즘은 국민의 에너지와 능력을 바람직하지 못한 쪽으로 흐르게 한다고 봤다. 국가의 생산능력과 분배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 판단의 규범이 될 것이다.

기축통화는 사전(辭典)적으로는 무역과 금융거래의 ‘기준’이 되는 통화를 의미하지만, 공식적으로 규정된 용어는 아니다. 해외에는 기축통화의 지위에 도전하는 대안통화라는 개념은 있지만, 기축통화와 대안통화, 심지어 조금이라도 이름이 익숙한 통화까지 묶어 기축통화 그룹으로 정의하고, 나머지 통화를 비기축통화 그룹으로 구분하는 경우는 없다. 유독 국내 언론만이 그런 구분을 즐겨하고, 심지어 한국은행과 일부 경제학자들이 이에 동조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한국과 같은) 비기축통화국의 재정지출과 국가부채의 증가는 경제성장에 해롭다”는 논리는 자연과학을 짝사랑했던 고전경제학의 기계적인 단견이 금본위 아닌 변동환율의 시대에 되살아나 여전히 많은 것들을 구속하고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억지처럼 느껴진다.

우주와 지구에는 상하좌우가 없다. 인간이 ‘적도’(equator)를 발명함으로써 지구를 상하좌우로 구분하였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려 애썼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이 발견한 질서는 아직 현실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문이 발전하면 답이 명확해지는 게 아니라 질문이 많아지고, 그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분야(예컨대, 철학이나 정치학)를 기웃거리는 것 같다. 한국의 경제학이 객관성과 가치 중립이라는 미신, 혹은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에 관한 텍스트”에 빠져 기축통화 개념 같은 것을 남용하면서 스스로 퇴보 중인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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