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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2차 추경안,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by 노진호

이재명 정부의 2차 추경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소비 쿠폰 10조 원이 핵심인데, 여기에 지역사랑상품권 등 소비 인센티브, 소상공인 채무조정, 구직급여 지원, 신산업 투자 등을 합치면 추가 재정지출 규모는 약 20조 원이 된다. 재정지출은 보통 정부소비, 정부투자, 이전지출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번 추경안 20조 원을 따져 보니, 대가 없이 지급하는 이전지출이 소비쿠폰 10조 원을 포함해 대략 16조 원이고 정부투자는 약 4조 원 정도로 파악된다.

2020년에 한국은행이 만든 거시계량 모형(BOK20)에 의하면, 1조 원의 이전지출은 3년 간 약 0.44조 원의 GDP 증가로 이어지고 1조 원의 정부투자는 3년 동안 대략 1.04조 원의 GDP 증가로 이어진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2차 추경안으로 20조 원의 재정지출이 늘어나지만, GDP는 3년 동안 11조 원만 늘어난다.

< 2차 추경안의 GDP 증가 효과 (한국은행 거시계량 모형에 의한 단순 계산) >


GDP를 창출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9조 원은 어떻게 될까? 재정적자는 재정지출에서 세금을 뺀 것으로 정의된다. 세금으로 회수하지 못하는 재정적자의 누적분은 국가부채로 남는다. 따라서 9조 원은 국가부채의 증가로 기록될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재정 주도의 성장이 가져올 GDP의 부실한 증가와 국가부채의 증가에 대해 우려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국가부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브런치에 들어와 말하고 싶었던 주제다. 첫째, 모든 국가부채는 그 액수만큼 가계와 기업의 금융자산 원천이 된다. 어느 가계가 정부로부터 소비 쿠폰을 받아 사용하는 대신 원래 소비해야 할 돈으로 은행 원리금을 갚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정부의 기대만큼 소비와 GDP가 늘어나지는 않더라도 가계의 금융자산이 증가(또는 금융부채가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소상공인 채무조정, 구직급여 지원, 신산업 투자 등도 마찬가지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것과 동일한 액수만큼 가계와 기업에 여유자금이 생긴다. 가계와 기업은 세금 납부의 주체다.

둘째, 국가부채는 대차대조표의 숫자를 맞추기 위한 결과적인 기록에 불과하다. 실무적으로 “세금이 먼저이고 재정지출이 나중”이 아니라 “재정지출이 먼저이고 세금이 나중”인데, 재정지출을 위해서는 먼저 국채(≒국가부채)부터 발행해야 한다. 물론 나중에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소득(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높아진다. 하지만 세금이 걷히지 않는 것은 경제가 살아나지 못했기 때문이지 단지 재정지출을 늘렸기 때문이 아니다. 어차피 경기가 위축되면 재정지출을 늘리지 않아도 세금이 감소해서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다. 국가부채가 늘어나면, 남의 돈을 빌려 투자하는 기관 투자자들의 국채 투자 심리가 위축된다. 그러면 원활한 국채 발행과 재정지출에 지장이 초래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부채의 적정 수준은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언제든지 국채를 매입할 수 있는 중앙은행―그래서 역설적으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과 물가 관리 목표가 매우 중요하다.―이 존재하고, 최악의 경우 정부가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보다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부채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말에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감세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것을 연장하는 OBBB(One Big Beautiful Bill)법안이 올해 5월 22일 하원을 통과했고, 7월 초에 상원을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법이 통과되면 미국의 국가부채가 줄어들 수 있었던 좋은 기회가 사라진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 연장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은 국가부채라는 결과적인 기록보다 미국 경제(GDP)의 성장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은 국가부채가 너무 적다. 아니, 정부의 금융순자산이 너무 많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를 살펴보면, 정부의 금융순자산(=금융자산-국가부채)은 2024년말 기준 1,114조원으로서 GDP 대비 44%에 이른다. 해외 통계를 살펴봐도 정부의 금융순자산이 플러스(+)인 나라는 찾기 어렵다. 한국 정부의 금융순자산이 많은 이유는 변동환율제도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하게) 외환보유액을 많이 보유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그걸 감안해도 정부의 금융자산은 외환보유액의 4배가 훨씬 넘는다. 정부 운용자산은 수익성으로 평가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자원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우리나라 국가부채의 1/4은 재정지출과 무관한, 즉 가계와 기업의 금융자산 증가로 연결되지 않는 원화 표시 외평채다. 원화 표시 외평채에는 그만큼의 원화 자산이나 외화 자산이 매칭되어 있으므로 진정한 부채라고 보기 어렵다.

재정지출과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는 아마도 정부의 비효율성과 민간 부문의 도덕적 해이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런 문제는, 정부는 돈만 대고 민간이 기획과 운영을 주도하면서 동시에 감시 투명성을 높이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다. 도덕적 해이는 인간 본성이 아니라 정보의 비대칭성에 기인하는 것이므로 투명성을 통해 개선할 수 있다. 재정지출의 개선 방식은 생각하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국가 재정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것은, 조금 과장하면 ‘어리석은’ 백성의 고혈을 짜내기 위해 삼정(三政)을 문란케 한 19세기 조선시대 양반 관료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의 거시계량 모형은 2000년~2019년의 데이터에다 여러 복잡한 가정을 덧붙여서 미래를 예측한 것이다. 재정지출의 구분도 임의적인 것이고, 생산성이나 공급 능력의 변화 같은 것도 모형에 반영되지 않았다. 애초에 현실을 완전히 반영하는 경제 모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고, 자녀 교육에 무리한 지출을 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소비와 저축 성향, 그리고 재정지출과 GDP 창출의 선순환 효과는 꽤 달라질 것이고 경제 모형도 바뀔 것이다. 문제는 관심과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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