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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오해가 불러온 스테이블 코인 판타지

by 노진호

경제 뉴스는 이해하기 힘들다. 용어도 그렇지만, 논리적으로도 이해가 잘 안될 때가 많다. 요즘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스테이블 코인에 관한 경제 뉴스다. 지금이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할 ‘골든타임’이라고 하는데, 왜 골든타임인지 명확한 이유를 못 찾겠다. 암호자산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다른 선진국이 이미 시작했으므로 우리도 빨리 도입해야 한다, 는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주장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오히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우선 스테이블 코인의 장점부터 살펴보면 대략 다음의 두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비트코인을 포함해 다른 고위험 암호자산과의 교환을 쉽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 은행 계좌에 있는 예금을 가지고 암호자산을 구입하려면 코인 거래소를 이용해야 한다. 그런데 분권적으로 관리되는 소위 블록체인 암호자산과 은행에 의해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는 은행예금과의 거래는 구조적으로 불완전하고 불편하다. 예컨대, 해킹 발생의 위험이 크다. 반면, 교환 플랫폼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느냐 하는 숙제가 있기는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 코인과 다른 암호자산 사이의 교환은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하다.

두 번째 장점은,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은행예금보다 거래 비용이 더 낮다는 점이다. 은행예금은 은행의 대규모 저장 장치에 각각의 소유주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루 평균 약 2,500만 건의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예금주가 바뀐다. 한국은행은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거래의 변동 결과를 반영하여 각 은행들의 예금 기록을 조정한다. 이 같은 거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보안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반면, 블록체인 방식의 스테이블 코인은 분산된 서버나 무수히 많은 전자지갑에 기록들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중앙 기록장치가 필요 없고, 분산된 서버들이 상호 감시하는 시스템이므로 보안 비용이 적게 든다.

하지만 이들 장점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첫째, 스테이블 코인의 안정성이 확실하지 않다. 스테이블 코인은, 주식시장으로 치면 증권사의 MMF나 CMA 계좌 내 예금이랑 비슷하다. MMF나 CMA 예금과 매칭이 되어 있는 담보 자산(국채, RP 등)의 가치, 구성, 유동성 등에 문제가 생기면 MMF나 CMA 내 예금은 100% 보장되지 않는다. 그건 백화점이나 모바일 상품권도 마찬가지이고, 스테이블 코인도 마찬가지다.

둘째,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이체나 결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일단 해외에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으로 결제할 만한 가맹점이 거의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화 사용처가 없는 해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송금할 이유는 없다. 국내 송금용이라면 더더욱 의미가 없다. 금융 소비자들은 이미 국내 어디에서나 은행 이체, 신용카드 등을 수수료 없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셋째, 만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쉽게 바꿔서 해외에서 결제할 수 있게 된다면, 여러 부작용이 생긴다.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외화 관련 규제가 있다. 예컨대, 개인이 원화를 달러화로 바꾸어 해외에 송금하는 것은 1인당 연간 10만 달러까지만 가능하다. 만일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 쉽게 바꿀 수 있다면, 국내 개인과 기업의 외화 취득이 더 쉬워지는 대신 재산의 해외 도피 등에 악용될 수 있다. 또한, 모든 국가는 ①환율의 안정, ②통화정책의 독립성, ③자유로운 자본 이동의 세 가지 모두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으며, 셋 중 한가지는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 달러화와 쉽게 호환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생긴다면 자본 이동이 촉진되겠지만, 대신 환율 변동성이 커지거나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약화된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자유화를 주장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라면, 이 점도 균형적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참고로, 요즘 언론에서 스테이블 코인 도입 사례로 자주 나오는 홍콩과 싱가포르는 환율 페그제, 즉 사실상의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다. 이들 나라는 자본이동을 완전히 자유화하는 대신, 환율 안정을 선택하고 자국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포기했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자국 통화를 달러화로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스테이블 코인을 만들더라도 시스템적인 일관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선택한 나라다. 달러화와 호환되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도입되면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지든지, 아니면 통화정책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넷째, 권장할 만한 암호자산이 없다. 증권사에 가서 CMA 계좌를 개설하면, 주식 투자가 쉽고 편해진다. 하지만 믿을 만한 주식이 하나도 없다면 CMA 계좌 도입은 의미가 없다. 스테이블 코인 도입도 마찬가지다. 신뢰할 수 있는 암호자산도 없고 교환 플랫폼도 없는데, 스테이블 코인을 도입한다고 해서 암호자산 생태계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오해, 혹은 조급증은 은행예금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은행예금은 돈의 보관 수단, 혹은 어떤 절대적인 “가치”의 보관 수단이 아니다. 은행대출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돈(또는 “가치”) 그 자체가 은행예금이다. 은행예금은 은행의 차용증으로서 국가가 안전을 보호하는 은행시스템 내에서만 유효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은행대출은 물건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 또는 기업으로부터 임금을 받거나 자산을 보유한 가계가 은행예금(은행의 차용증)을 얻는 대가로 은행에 제공한 차용증이다. 은행예금을 빌린 가계와 기업은 원금보다 더 많은 은행예금(원금과 이자)을 확보해 은행에 돌려주어야 한다. 은행예금은 은행시스템 내에서 물건과 서비스, 자산을 거래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니 은행시스템의 관리 비용이 비싸다고 해서 스테이블 코인이 은행예금이나 은행이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 돈이란 무엇인가 - (2) 부채이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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