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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강요하면 안 되는 노가다 정신

by 노진호

OECD가 평가한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보면,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는 OECD 38개 국가 중 19위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낮다. 분모를 고용된 노동자로 바꾸면, 한국의 노동자 1인당 GDP는 OECD 국가 중 24위로 낮아진다. 노동자 1명이 1시간에 만들어내는 부가가치($54.6)는 OECD 국가 중 31위로서 순위가 더 떨어진다.

통계로 판단컨대, 한국이 부자 나라인 이유는 낮은 노동생산성에도 불구하고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일하고, 또한 인생의 대부분을 일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국제 비교가 가능한 2022년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간노동 시간은 1,901시간이다. 짧을수록 순위가 높다고 했을 때 38개 OECD 국가 중 34위에 해당한다. OECD 38개국 중에서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긴 나라는 칠레, 코스타리카, 멕시코, 콜롬비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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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생산성은 아래와 같이 분해될 수 있다.

노동생산성 = 부가가치÷노동력

= (총자본÷노동력) × (부가가치÷총자본)

= 자본장비율(=총자본÷노동력) × 자본생산성(=부가가치÷총자본)


노동생산성은 보통 노동자가 투입한 “시간”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이에 비해 자본생산성은 국가 경제와 기업에 투입된 “돈”이나 “장비”(equipment)를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다. 다만, 장비는 부동산의 가치와 분리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예컨대 공장이나 건축물의 가격은 입지(location)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비와 부동산 등을 모두 합친 비금융자산(실물자산)을 자본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피케티도 ‘21세기 자본론’에서 아래의 <표2>와 같이 비금융자산을 자본으로 정의했다. 비금융자산은 시장에서 “돈”으로 거래되고, “돈”의 가치로 평가된다.

2023년 “GDP(부가가치)÷비금융자산의 시장가격”으로 평가한 한국의 자본생산성(=부가가치÷자본)은 10.9%로서 미국(21.1%)과 영국(19.5%)의 1/2, 그리고 일본(15.4%)의 2/3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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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자본생산성은 국가에 속한 기업의 ROA(=이윤÷자산)로도 추정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별 평균 ROA 자료는 찾기가 어렵다. 반면, ROA와 비례 관계에 있는 ROE(=ROA×(자산/자기자본)=이윤÷자기자본)는 상대적으로 찾기가 쉽다. 최근 자료를 살펴보면, 증권거래소 상장기업의 10년 평균 ROE로 평가한 한국의 자본생산성은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은 물론, 대만, 중국, 인도 등의 신흥국(emerging countries)보다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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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한국은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을 이수한 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하지만 OECD 국가 중 제조업 비중은 가장 높고 서비스업 비중은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서비스업의 구조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고려하면 한국의 서비스업은 영세하고, 지식보다는 노동집약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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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지만, OECD 국가 중 노동생산성은 매우 낮고 연간 노동시간은 매우 길다. 또한, OECD 국가 중 제조업 비중은 높고 서비스업 비중은 가장 낮은 나라에 속한다. 금융자산을 제외한 자산은 소득(GDP)에 비해 비싸고, 자산의 상당 부분은 부동산이 차지한다. 높은 교육열과 자산 가격, 그리고 낮은 생산성 사이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교육열과 소득에 비해 노동과 자본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모두 과학, 기술, 문화, 예술, 인문학 등의 온갖 지식과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공통된다. 하지만, 서비스 생산물은 유형(tangible)의 물건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범위가 넓고 발전 가능성도 높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스타강사에게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라는 문제는 있지만―을 가진 한국이라면 서비스업에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면 공교육도 개혁하고, 재정도 투입해야 한다. (모슬러의 사례처럼) 국가의 돈은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인센티브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돈 자체는 종이 조각, 혹은 채권-채무의 기록에 불과하다.

남양유업은 부채비율이 매우 낮은 회사다. 1999년에는 무차입 경영을 선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호한 재무 건전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영업 부진이 지속됐다. 자본생산성을 반영하는 ROA(=이윤÷(자기돈+남의돈))와 ROE(=이윤÷(자기돈))의 경우 2024년에 각각 –6%와 –7%였다. 보호무역 시대에 직면한 한국도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게 답일까?

기업과 달리 국가는 파산하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열뿐 아니라, 재정건전성도 가장 우수한 나라에 속한다. 노동과 자본의 비효율적인 활용에는 관심 두지 말고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부터 걱정하라는 말은 어느 경제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지 묻고 싶다. 한국은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이고, 노인은 많아지는 추세다. 낮은 노동생산성과 긴 노동시간만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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