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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환율과 외환보유액이 아니다

by 노진호

원/달러 환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2020년 말 달러당 1,100원 미만이던 환율은 2025년 4월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480원대를 기록했다가 6월 중 1,350원까지 하락했지만, 11월 12일 1,466원으로서 다시 상승 중이다.


< 최근 원/달러 환율 추이 >

자료 : 한국은행


환율이 상승하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하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국 통화로 평가한 외화부채(=외화부채×환율)의 규모가 환율 상승에 비례해서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율의 가파른 상승에도 불구하고 최근 CDS 프리미엄 같은 국가 신인도 지표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외국인의 채권과 주식 순매수도 대체로 안정적이며, 코스피는 어느새 4,100을 넘었다. 금융시장은 이다지도 평온한데 환율은 왜 자꾸 상승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근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국내 경제주체가 소득에 비해 지출을 줄이고, 그 결과 얻은 경상수지 흑자를 해외자산에 투입하는 현상이 ‘안정화 작용’ 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화 작용이란 해외자산의 가치가 높아지면 국내 가계와 기업이 지출과 수입(import)을 늘림으로써 경상수지 흑자와 대외 순금융자산을 줄이는 일종의 반작용을 의미한다.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면 달러화 예금(자산)이 국내에 유입된다. 수출로 달러화를 얻은 기업이 달러화 예금을 원화 예금으로 바꾸면, 달러화 예금은 원화 예금을 제공한 정부나 은행, 기업 등으로 옮겨간다. 옮겨간 달러화 예금은 다시 달러화 표시 정부채나 유로화 표시 정부채로 바뀔 수도 있고, 해외 주식이나 금, 비트코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 어쨌든 국내에 유입된 외화는 수입(import)이나 투자 손실 등을 제외하고는 사라지지 않는다. 외화부채를 갚으면 외화자산은 줄겠지만, 외화순자산은 변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경상수지 흑자의 누적과 대외순금융자산(NFA)은 이론적, 장기적으로 일치한다. 아래 표는 이상의 내용을 ①→②→③→④의 순서로 정리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환율이 한 방향으로만 상승하는 것은 ④→①로 갈 때 국내 소비와 투자 지출이 변동하는 ‘안정화 작용’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으로 이해하면 된다.


< 대내외 실물 및 금융 균형 방정식 >


한국의 경상수지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흑자 기조를 유지해 왔고, 이로 인해 대외순금융자산(NFA : Net Financial Asset)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오랫동안 대외순금융자산은 경상수지 흑자의 누적분보다 적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해외 투자는 미국 정부채 같은 안전자산에 집중되었던 반면, 해외 투자자들이 구입한 국내 자산(언젠가는 외화로 바꾼 뒤 해외로 빠져나갈 것이므로 한국의 입장에서는 대외금융부채)은 상당 부분 주식이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보유도 점차 늘어난 데다, 최근 미국의 주가 상승과 원/달러 환율의 상승 등에 힘입어 한국의 대외순금융자산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정부가 해외 차입을 통해 외환보유액을 확보할 필요성도 줄었다.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 누적분과 대외 순금융자산 추이>

자료 : 한국은행


이상과 같은 일방적인 대외순금융자산(NFA)의 증가와 환율의 지속적인 상승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환율과 국가 위험과의 관계가 약화되고 동시에 외환보유고의 중요성도 떨어졌음을 시사한다. 환율이 상승하면 외화부채보다 대외순금융자산(NFA)의 가치가 더 커진다. 이는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 정부가 굳이 외환보유액을 사용해 환율을 하락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일자리가 불안한 실속 없는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다. 일자리와 소비와 투자는 양면성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투자와 일자리는 비용이며, 가계 입장에서도 소비는 자산의 감소 요인이다. 하지만 일자리와 소비 지출, 그리고 투자 지출은 다른 누군가의 소득이 되고, 동시에 자본(capital)이 되어 경제를 안정적으로 굴러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소비와 투자 지출을 줄이고, 그 결과 누적되는 경상수지 흑자와 외화 자산을 선진국의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외국인들이 소비와 투자 지출을 그들의 소득보다 많이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리나라에 어떤 이득이 될까? 식민지도 아닌데 우리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열심히 벌어 선진국을 지원하는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축통화에 대한 환상이 빚어낸 결과로 생각된다. 원활한 국제 거래를 위해서는 기축통화가 필요하고, 실제로 달러화가 관행적으로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기축통화는 사라졌다. 적어도 자산 보유 측면에서는 그렇다. 닉슨 쇼크 이후 도래한 변동환율제의 세상에서는 모든 통화의 가치가 상대적이다. 지구가 돌고 태양도 도는 것처럼 모든 통화의 가치 역시 돌고 돌게끔 되어 있다. 우주와 통화는 위아래도 없고 중심축도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일부 경제학자나 언론이 상상하는 ‘절대 반지’ 같은 기축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통화의 상대가격을 의미하는 환율, 기축통화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외환보유액, 단순히 숫자에 불과한 국가(정부)부채 같은 지엽적인 개념에 너무 많은 신경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 조금만 쏟으면 된다. 대신 일자리와 소비, 그리고 이와 관련한 우리나라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 등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정지출은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미래 불안을 완화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재정지출의 누적은 국가의 일부인 정부의 부채가 되며, 정부의 부채는 다른 누군가(예컨대, 연금 소득자)의 자산과 소비 지출의 재원으로 귀결된다. 과도한 자산 쏠림이나 비효율적인 자원의 사용은 세금으로 해소할 수 있다. 예컨대, 부동산에 대한 세금은 자원의 부동산 쏠림을 막고 자산을 구입하기 어려운 가계의 임대료 부담을 낮추는 데 사용함으로써 임금 상승 압력을 낮추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아래 그림처럼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영국의 통화가치는 만성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인 한국과 일본의 통화가치보다 안정적이다. 영국이 기축통화국이라거나 튼튼한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라서가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실속 있는 성장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 한국, 일본, 영국의 GDP 대비 경상수지 추이 >

자료 : 한국은행


< 달러화 대비 한국, 일본, 영국의 통화가치 추이 (2020.1=100) >

자료 : 한국은행


[참고자료]

이희은, 장예진, “순대외자산 안정화 가능성 평가 및 시사점”, BOK 이슈노트 2025-32호, 한국은행, 202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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