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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 경제와 부동산, 그리고 성장의 제약요인

by 노진호

우리 동네 헬스장은 운동기구만 보면 2~30년 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예약과 결제 등 많은 것들이 자동화되었다. PT(Personal Training)가 소프트웨어나 SNS를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등 운동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유형자산은 거의 그대로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이 많아진 것이다.

‘자본 없는 자본주의’의 저자 조너선 해스컬에 따르면, 선진국으로 갈수록 연구개발, 소프트웨어, 브랜드, 조직 역량 등 사람을 주요 자원으로 활용하는 무형자산이 늘어난다. 하지만 기존의 경제 분석은 무형자산의 가치를 간과하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할수록 점점 더 많은 경제 영역이 미지의 상태로 내버려진다.

부동산의 경우를 살펴보자.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부동산의 가치평가 기준에는 소득, 임대료, 대출금리, 세금 등이 있다. 이런 변수만으로는 임대료나 소득에 비해 특정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다른 지역보다 크게 높은 이유, 금리와 세금을 인상해도 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이유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 에드워드 글레이저에 의하면, 도시는 헬스장의 고객 관리 프로그램과 유사한 수많은 무형자산에 의해 스필오버(spillover)와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는 공간이다. 스필오버란 무형자산이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에게 공짜 아이디어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의미하고 시너지 효과란 무형자산들이 조합되면서 예기치 않게 커다란 이익이 창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무형자산이 넘쳐나는 도시에는 기업과 인재들이 찾아온다. 젊은 사람은 짝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대도시에 주택을 보유하면 임대료의 불확실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고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더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학군 프리미엄과 특정 지역에 거주한다는 자부심도 누린다. 이런 무형자산의 기대 이익을 고려하지 않으면 부동산 가격의 예측이나 대책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무형자산의 증가가 유토피아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브랜드, 디자인 같은 무형자산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만 공급은 추가 비용 없이 늘릴 수 있다. 반면, 잘못 투자하면 원금 회수가 어렵다. 따라서 무형자산 투자 여력이 큰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할 수 있고, 무형자산이 많은 대도시로의 쏠림 현상도 가속화될 수 있다. 극단적인 효율성 추구와 ‘따라가기’는 시스템의 붕괴를 불러온다. 그런 사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포함해 역사적으로 많다.

결국 무형 경제의 시대에는 국회와 정부에 더 큰 역할이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자본이득세는 세율이 근로소득세보다 낮다. 자본은 이동성이 높아서 세율을 올리면 조세 관할권이 해외로 쉽게 옮겨갈 수 있지만, 노동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주거용 부동산의 경우는 넓은 의미의 자본에 속하지만, 해외로의 이동은 제한된다.

따라서 도시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높은 임대료의 안정화, 서울로의 지나친 쏠림 억제, 무형자산의 지방 분산 등을 위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취득가격 기준으로 재산세를 현실화하는 것도 지역 간 부동산 투자의 기대 수익률 격차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험 점수, 학벌, 자격증처럼 무형 경제와 맞지 않는 교육과 채용 시스템도 손봐야 한다. 지방에 무형자산이 축적되도록 인프라 투자도 크게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중앙정부)지출의 재원은 세금이라는 허술한 논리부터 다시 따져봐야 한다. 재정지출은 누군가의 소득과 저축의 원천이 되고, 재정지출을 위해 발행한 정부채는 누군가의 자산이 되며, 세금은 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과잉 수요를 방지하는 수단이 된다. 재정지출과 세금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관리하는 수단이지만, 고정환율제나 통화동맹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서로 제약하는 관계에 있지 않다. 제약요인은 돈이 아니라 무형자산과 인적자산을 포함한 자원이고, 중요한 것은 자원을 활용한 생산능력이다.


[머니투데이,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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