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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관세의 기원 - 미란 보고서

by 노진호

서구의 눈으로 본 지금의 중국은 과거 제국주의 유럽과 비슷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2023년 기준 GDP 대비 중국의 민간 소비와 투자는 각각 40%와 41%로서 소비보다 투자가 더 많다. 중국 내부에서는 기업의 뼈를 깎는 원가 절감과 판매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규모의 경제 효과까지 고려하면 중국은 조만간 제조업 강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3년 GDP 대비 미국의 민간 소비와 투자는 각각 68%와 17%다. 미국과 비교하면 중국의 과소 소비와 과잉 투자가 얼마나 비대칭적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노동력과 자원이 풍부하다. 게다가 이윤극대화의 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남미의 리튬 광산을 비롯한 세계의 각종 자원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과잉 투자로 만들어진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들은 중국 내에서 소화하기 힘들다. 다른 나라 경쟁 회사들의 생존을 압박하고 글로벌 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중국은 군사력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급성장은 국제무역의 증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도 세계화의 혜택을 누렸다. 중국을 포함한 개도국의 저가 제품을 이용해 오랫동안 고성장-저물가를 유지했다. 구글,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 등 소위 매그니피센트 7과 같은 대형 IT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안정적인 장기 고성장과 글로벌 자본의 미국 유입 덕분이다. 다만 세계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미국의 중산층으로 인해 미국 내 소득 격차는 확대되었고, 이로 인한 불만이 미국 내부의 갈등과 중국 혐오라는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트럼프가 두 번째로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이 된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직후인 11월 13일 발표한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재구축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소위 ‘미란 보고서’(Miran report)가 그것이다.

미란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기축 통화의 지위 때문에 달러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높아졌다. 강달러로 인해 수출이 위축되고 기업들이 미국 바깥으로 빠져나가면서 제조업이 쇠퇴했으며 미국 내 일자리도 감소했다. 둘째, 미국은 기축통화 비용뿐 아니라 동맹국에 안보우산을 제공함으로써 안보 비용까지 부담하고 있다. 셋째, 안보우산은 공공재―일단 공급되면 모두가 혜택을 보기 때문에 아무도 공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재화나 서비스―이면서 동시에 든든한 장기 자산이므로 안보우산을 제공받는 동맹국은 미국에 대한 장기투자 형태로 안보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장기국채를 불리한 조건으로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할인채의 형태로 미국 국채를 장기 보유해야 하며, 이자가 지급되는 기존의 국채 보유분에 대해서는 이자 소득의 일부를 수수료 형태로 반납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넷째, 미국은 모든 무역 상대국에 높은 수준의 관세를 부과한다. 그리고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한다. 미국 국채를 (불리한 조건으로) 장기 보유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서는 영구적으로 고관세를 유지하고 동시에 안보우산의 바깥으로 밀어낸다. 다섯째, 유로화, 엔화 등으로 구성되는 외환보유고를 축적해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과도한 달러화 강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외환시장에 개입한다.

주목할 점이 많지만, 기축 통화로 인한 달러 강세의 부작용은 완화하면서도 기축 통화의 지위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점, 즉 미국 국채에 대한 기대 수익률을 하락시켜 달러화(표시 미국 국채)에 대한 수요는 줄이면서도 안보우산을 제공받는 나라들에 장기국채를 분담시킴으로써 급격한 국채가격의 하락은 막겠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런 체제가 유지되려면 과거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인위적 절상을 유도했던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보다 훨씬 강제적이고 굴욕적인 동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미란 보고서에는 달러화 약세를 위한 이런 협조 방식을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 부르고 있다.

한편, 외환보유고를 활용함으로써 기축통화의 지위와 달러 약세를 동시에 유지하겠다는 점도 눈에 띈다. 미란 보고서에 언급된 외환보유고는 트럼프가 비축을 지시한 비트코인 중심의 전략자산(strategic bitcoin reserve) 개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란 보고서는 인터넷 상에 많이 소개되어 있고, 비판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있고, 아직 구체적으로 정책이 구현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많은 언론에서 미란 보고서에 주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트럼프가 생각하는 큰 그림(big picture)―아마도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를 유지하면서 중국과 러시아 등에 대항하는 안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동맹국들이 그 비용을 분담하는 것―을 반영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국시간으로 4월 3일 목요일쯤 발표될 고무줄 같은 상호관세의 궁극적 목적은 이미 미란 보고서에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븐 미란은 현재 41세이며 하버드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경제학자다. 그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직후 발표한 소위 ‘미란 보고서’로 인해 트럼프의 환심을 샀고, 곧바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라는 장관급 직책에 임명되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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