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상호관세가 발표됐다. 상호관세율 산정 기준으로는 『미국의 (무역적자÷수입액)×0.5』가 제시됐다. 예컨대, 미국은 2024년 중 한국으로부터 1,330억 달러의 재화를 수입했는데, 같은 기간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액이 660억 달러니까 수입액 대비 무역적자의 비율은 49.6%이고, 거기에 0.5를 곱한 뒤 반올림한 25%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이 된다.
이런 계산법은 관세율을 1% 올리면 무역수지가 2% 개선될 수 있다는 단순 가정에 입각한 것인데, 각국의 수출입 가능 곡선이 제각기 다르다는 점―소위 마샬-러너 조건의 불충족―을 감안하면 매우 허술하고 억지스러운 계산 방식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경제적인 이유, 또는 고품질의 값싼 물건을 수입해서 미국이 얻는 이익 역시 고려되지 않았다.
이 같은 계산식으로 도출한 중국에 대한 상호관세는 34%다. 불법 약물 펜타닐 유입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부과된 20%의 국가별 관세를 고려하면 중국에 부과된 관세는 사실상 54%가 되었다. 트럼프 집권 1기 때 부과되어 바이든 행정부 동안 유지된 25%의 관세까지 포함하면 중국에 대한 관세는 79%에 이른다. 캄보디아 49%, 베트남 46%, 스리랑카 44% 등 동남아 국가들의 관세율이 높아진 것에도 중국이 이들 국가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한다는 사실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이제 중국은 직접적인 대미 수출은 물론, 동남아와 멕시코(25%), 캐나다(25%), 한국(25%), 일본(24%), EU(20%)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국에 수출하던 것에도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중국만 어려워진 게 아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높은 관세율 때문에 미국에 대한 수출이 어려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의 수출을 포기한 중국 제품이 자국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할지, 부과한다면 얼마나 부과할 것인지, 그리고 미국이 배제된 새로운 경제블록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고,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 내지 협력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지난번에 언급한 미란 보고서(Miran report)는 바로 이러한 딜레마를 잘 포착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과 적대 관계에 있는 나라들, 특히 중국 인접국들은 여전히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우산을 활용하면서 핵심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싶어 한다. 동시에 잠재적 강대국이지만 아직 기술력 수준이 제한된 중국과의 기술 협력을 회피하고 싶어한다. 많은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뿐 아니라 중국이 자국 시장을 발판으로 기술력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는 중국 주변국의 산업 생태계를 고사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을 포함한 다수의 나라들은 일단,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기보다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리는 조건으로 상호관세를 낮추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또는 제2의 플라자 합의―미란 보고서에 의하면, 마러라고(Mar-a-Lago) 합의―를 통해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즉 달러 약세를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게 바로 미란 보고서의 취지이자, 트럼프가 노리는 전략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이든 미란 보고서의 노림수든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축통화(key currency)로서 달러화의 존재다. 기축통화란 무엇일까? 기축통화는 복잡하고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그냥 결제에 사용되는 통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국제 무역을 위해서는 기준(기축)통화의 존재가 필요하다. 예컨대 n개의 국가가 무역을 하면 동일한 성질의 물건에 n(n-1)/2의 가격이 형성된다. (n은 국가의 수, n-1은 양국간 환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기준 통화가 있다면 동일한 n개의 국가 제품에 대해서는 n개의 가격만 형성된다. 수입을 하는 나라는 국산품을 포함한 n국 제품 중에 가장 싸거나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제품을 선택해서 수입을 하면 된다. 영어만 알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가고 싶은 나라를 골라서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이것은 기축통화가 필요한 이유이지, 기축통화가 달러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현재 많은 나라들이 달러화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이후 미국의 연방은행만이 달러화를 금으로 바꿔주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아무런 사용가치가 없는 금을 신뢰했던 것은 오랫동안 금본위제도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금본위제가 유지된 이유는 금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즉, 금에 대한 신뢰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라는 순환론적인 요인으로 귀결된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금 태환(conversion)을 포기한 이후에는 달러화를 금으로 바꿔줄 미국 연방은행의 의무가 사라졌다. 그렇지만 국제 무역의 규모는 계속 늘어났고, 기준 통화가 필요한 국제 무역의 속성 또한 바뀌지 않았다. GDP 규모가 크고 방대한 공급망 네트워크를 가졌으며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인 미국의 달러화가 기축(무역의 기준) 통화로서 계속 유지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문제는 미국의 달러화가 결제 통화로만 활용되지 않고, “모든 나라가 원하기 때문”이라는 순환론적인 원인에 의해 보유 가치 있는 비축 통화로 사용됨으로써 달러화의 가치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