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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에디터 Aug 01. 2023

남편의 '선' 지키는 육아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퇴근은 늦어도 육아관이 투철한 남자와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는 참 다정한 사람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사다 주고, 운전을 하다가도 내가 배고프다면 식당을 찾으러 차를 유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게 있다. 그는 육아에 적극적이지 않다. 귀가시간도 늦고 가부장적인 남자였다. 특히 교육에 있어 내가 이끄는 대로 절대 따라오지 않았다.


 그는 나의 '슬기로운 육아생활'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남자였다. 특히 아이들 교육면에서 정확히 나와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다.




'선' 넘지 않는 육아

도와는 줄게 하지만 의지는 곤란해


아이가 태어나자 신랑의 귀가 소리가 그렇게 반가웠다.  그도 집에 들어오면 아이를 볼 생각에 나처럼 설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반가운 마음은 잠시 뿐.

나는 남편이 와서 한숨 돌리고 싶었고, 그는 회사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우리의 이해관계는 그렇게 부딪혔다.  


그는 절대 '선'을 넘지 않는 남자다. 육아를 도와주되, 육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자기가 가능한 시간만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주고, 절대 씻기거나 재우지는 않았다.

그의 육아방식은 참여와 의무라기에는 부족하고 '도와주는 포지션'을 유지해 자신만의 '선'을 철저히 지켰다.

아빠의 자리는 있지만 내가 그에게 의지할 수는 없게 설계됐다.

초보 엄마인 나는 힘들고 외로웠다.


늘 귀가시간이 늦어 아이들 교육은 나에게 맡겨놓을 만한데 또 고집은 강했다.

진짜 희한하게 아이들의 교육관은 나름 투철했다.

나는 당시 '책으로 배운 육아'를 열심히 실천했다. 이 세상에 나와 아이만 존재하듯이.

당시 나의 교육열은 폭주하는 자동차 같았다. 그런 나의 '브레이크'를 밟아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는 집에서 거의 대부분은 부재중이었지만 내가 질주할 때쯤 어디선가 나타나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 줘

근데 난 늦을 거야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하고 이젠 조금 생활에 여유가 생겼을 때 그는 나에게 "고생했어. 너도 사람답게 살아봐"라고 다정히 이야기해 줬다. 그 한마디로 남편과 갈등했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바람에 둘째를 임신했다.

그렇게 우린 다시 행복한 지옥으로 향했다.


'둘째'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느 날 밤.

그날도 그는 자정이 다된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그는 "매일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서 직장에 나가는 생활이 지겨워. 우리 첫째는 이렇게 안 살았으면 좋겠어. 앞으로 눈 뜨면 학교만 가야 할 텐데 입학하기 전에 아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 줘"  

나는 '참......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 가는 게 당연하지! 그게 왜 안쓰럽다는 건가? 근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


나는 과감히 유치원을 끊고 가정보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끊고 나서 생각났다.

그는 그 날밤 취해있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귀가할 것이고, 아빠는 부재중 일 것이라는 것.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둘째와 함께.


나는 그날부터 첫째를 공부방과 학원으로 돌리기로 결심했다.

입학 전 완벽한 홈 스쿨링으로 학교 공부에 철저히 대비할 생각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신랑에게 나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건 네가 하고 싶은 거지 아이가 하고 싶은 게 아니잖아. 학교 입학하기 전에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주라고. 학원으로 돌릴 거면 유치원으로 다시 보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라고. 도대체 무얼 하란 말일까? 그럼 네가 일찍 와서 하든지. 매일 늦게 오면서 어쩜 저리 당당할까!'

그렇게 첫째는 입학 전 유치원을 그만두고 실컷 늦잠 자고 친구들이 하원하면  놀이터에서 놀기만 했다.  


엄마는 사랑을 주는 사람


첫째 초등 입학 후 둘째 육아로 많이 지쳤지만 난 다시 열의를 다졌다. 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왠지 남의 공부는 잘 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 뒤 처지지 않기 위해서 둘째를 안고 첫째를 가르쳤다.

그날도 신랑은 귀가 후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둘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언니의 책상에서 물건을 만지고 언니의 공부를 방해했다.

첫째는 그런 둘째에게 계속 불만을 쏟아냈다.

나의 신경도 날가로워 졌다.


둘째 좀 데려가라는 말 대신 신랑 들으라는 듯이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다.

'애 안고 공부시킨다고 이렇게 힘드니 둘째 좀 데려가라'는 협박이었다.

그런데 신랑의 얼굴은 굳어갔다.

'왜? 지금 이 상황에서 나를 안쓰러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날 밤, 그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왜 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왜긴! 내가 공부습관을 잡아주려고 하는 거지."

"공부를 가르치려면 학원을 보내. 엄마의 역할은 사랑을 주는 거지 무얼 가르치는 게 아니야.

인생에서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거야"

"뭐?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하라고?"

"아니야 오빠는 옛날 사람이야.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몰라서 그래"


 엄마는 선생님이 아니야. 사랑을 주는 사람이지


그 말에 나는 다시 브레이크가 걸렸고, 생각하게 했다.

'그래, 난 교원 자격증이 없긴 해. 그래도 아이가 공부 못하면 엄마와 자식사이가 좋아질 수 있을까? 그럼 공부를 못하면 자식도 아닌가? 나도 공부 못했는데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나를 자식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나는 아이를 보란 듯이 성공시켜 경쟁에서 이기는 번듯한 사람으로 만들 자신이 있는데  그는 단 한순간도 나의 육아 방식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그를 이해시키는데 지치고 절망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깊어진 감정의 골 앞에 그는 술을 마셨고 나는 책을 읽었다.





이제 그만 강해지고 싶다


억울한 감정이 나를 잠식할 때 나는 외부에서 무엇을 찾기보다 내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릴지 책에서 찾았다.

조금씩 나의 억울한 감정을 벗겨내니,

내가 보이고 남편이 보이고 아이가 보였다.

나의 육아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행복으로 선회했다.

아이와 '학교공부'가 아닌 행복하게 살기 위한 '인생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만약 신랑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더라면?

난 아마 부족함을 모르는 행복한 여자였겠지. 하지만 책은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말을 잘 따라와 주고 육아에 적극적인 남편은 나에게 절망감도 주지 않았을 테고 그 행복을 만끽하느라 책을 읽거나 글 따윈 쓰지도 않았을 테니.


남편의 할 말 다 하면서 '선'지키는 육아는 외롭게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날 강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었다.


근데 난 강해졌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

나는 여전히 남편의 보이지 않는  '선'을 허물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사실 난 자꾸 내가 강해지는 게 싫다. 말초적인 즐거움만 쫓던 내가 어렵던 철학책이 술술 읽히는 게 싫다. 여기서 더 강해지면 종교에 귀의할 것 같다. 그래서 강해지기보다 행복해지고 싶다. 이것이 여자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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