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
'나는 이 순간을 위해서 태어났구나.'
낭만적인 말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삶에 내던져진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필요한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내가 있고 싶은 장소, 나를 찾아주는 사람, 정착할 자리가 얼마나 간절한지 알 것이다.
존재를 증명하고, 긍정 받는 곳에 있기란 그만큼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순간, 어떤 현실을 바라는 건 좋은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목표하던 대학이나 직장에 다니게 되는 그런 꿈을 이루는 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는 그 시간이 순수하게 좋아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걸 보는 순간이라던지, 한겨울 창밖에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그런 밤에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면서 멜랑콜리와 안락한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센치한 기분을 느끼는 그런 순간 말이다.
즉,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따금씩, 일상에서 느껴지는 작은 행복들이 어느 때보다 절절하게 느껴질 때 공간,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들은, 사진처럼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서 몇년이고 머무른다.
나는 분위기 있는 사진이나 회화를 보는 것을 즐기는데, 특히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그림, 숲과 바다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풍경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탐미주의적인 기호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어떤 순간을 더 어렴풋하면서도 바라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나는 최근에 피오르드와 오두막이 보이는 꽃밭에서 석양이 지는 풍경을 상상한다. 이전에는 가랑눈이 휘날리는 곳에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와 누런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아늑하게 늘어진 풍경을 가로지르는 상상하곤 했다.
비약이겠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조금씩은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런 순간이 내게 다가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찰나를 만끽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우리는 그런 곳에 가본 일도, 경험한 일도 없다.
나는 피오르드는 커녕 계곡에 가본 적도 없고, 서릿발 날리는 밤의 도로가 아늑하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런 찰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사람은 어떤 것을 바라기 마련이다. 심지어 그게 행복이나 성공, 명예를 쟁취하는 것 뿐만 아니라 파멸, 몰락과 같은 부정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감히 단언하지만, 무언가를 바라기 때문에 사람은 살아있다. 생존을 바라기 때문에 밥을 먹고,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돈을 바라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순간을 원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삶의 동력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지 않고, 기억에도 없는 그런 순간을 바라고, 지금을 견디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던 그런 잠깐과 그때의 기분이 나를 맞이해 줄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어떤 순간을 마주하기 위해서', '그 순간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말이다.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머지로 남겨진 삶의 시간들은 단순히 그때 만을 기다리는 지루한 시간과, 그것이 지나가고 난 뒤의 시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오로지 그 순간 만을 위해서 존재하고, 그 밖의 의미를 가지지 않으므로.
어떤 것에 도달하고 난 뒤, 당장 느껴지는 쾌감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창 그 느낌에 도취되고, 끝난 뒤에 오는 허무함도 알 것이다.
언제인가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에 담긴 철학을 들은 적이 있는데─내가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까뮈는 '목표를 성취할 때 뿐 아니라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 또한 긍정하고 즐길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인생이란 배를 타고 망망대해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목적지도, 하물며 뱃머리의 방향도 모르고, 정상궤도에 올라갔다고 믿을 성싶으면 태풍이 몰아치는 법이다.
그래서 이런 거장들의 고찰은 우리 인생의 등대가 되어주고는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결을 거스르는 배처럼,
쉴 새 없이 과거 속으로 밀려나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 <위대한 개츠비>
순간을 바라고, 순간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나쁘다며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를 거머쥐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에는 매순간 나름의 의미가 있다. 타협하는 것이라며 질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렇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언제까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찰나를 염원하는 것이 행복할지,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만끽하는 것이 행복할지 고민해보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에는 필연적으로 명암이 필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순간도 그렇지 않은가. 항상 성공만 하는 사람에게 성취란,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의 도전보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기기만 하는 삶에서의 성취는 실패 끝에 성취해냈을 때의 쾌감과 비교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실패하고 있을 때는 다시 한번 되뇌이길 바란다. 당신은 지금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