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연민의 예술적 경지,<인간실격>

by 박창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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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쯤에서였다. 조부모님의 시골댁에 가기 위해서 버스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며 문고본을 사서 읽었는데,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읽는 내내 기분이 더러웠다. 결국에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요시코가 범해지는 장면에 들어설 때 책을 버렸다. 당시의 나는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는지 명확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눌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그저 자신의 됨됨이가 못되먹었을 뿐인 것을 더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듯 담담하게 고하는 듯한 태도였다. 그로 인해 '인간실격'이라고 자신의 존엄을 스스로 버림으로써 마치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인간을 포기했다. (인간실격이니) 마음껏 욕해보라'고 멋대로 스스로 편해져 버리고자 하는 듯한 서술이 역겨웠다. 예를 들면,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 그 범행을 저지른 나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며 자기연민을 하는 듯한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경경동인지.jpg <경경동인지 망가 109>, 경경. 오바 요조의 작태는 이것과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자전적인 소설로 평가되는 <인간실격>에서, 오바 요조의 탈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이렇게 변명한다. '인간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다'고 토로하며, 자신의 일탈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들이었고, 자신에게 얽혔던 여자들은 모두 제멋대로였거나 혹은 '고삐를 놔버린 자신'의 탈선이었을 뿐이라고.

두 번째 이유는 자기연민과 결이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의 파멸로써 드러내는 자신의 타고남에 대한 묘사, 자기애였다. 작품에서 묘사된 주인공에 대한 사실만 묘사해보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별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지능과 지식 수준, 그리고 '별볼일 없는 자신'이 꼬시면 쉽게 넘어오고, 그러지 않아도 다가오는 '피곤한 여자들'... 피날레는 타인의 입을 빌려 묘사하는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여자라는 존재가 이중적이고 알수없는 존재라며 무서워하면서, 자신은 누군가를 '맞춰줘야 하는 사람', '내가 놀아줄 뿐인 사람', '내가 봉사해주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자신도 그들처럼 타인을 평가하고 이중적으로 군다. 자기 자신을 그토록 불쌍한 사람처럼 묘사하면서 말이다.

종합하자면 오바 요조는 인간실격이라고 말할 만큼 거창하게 불쌍한 인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에 비정상적으로 절망하고, 그것을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부여하면서, 남들의 동정과 잘난 배경으로 타인에게 빌어먹고 살아간 비겁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것이 <인간실격>을 버린 이유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과 다른 존재일수밖에 없다. 어떻게 완벽하게 똑같은 사람이 둘 씩이나 있을 수가 있을까? 평생을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일을 하는 둘이 단 하루라도 다른 일을 한다면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것을 과도하게 센티멘탈하게 받아들이고, 충격에 휩싸이며, 특수성을 부여하고, 탈선을 정당화한 말로末路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인간실격>이 예술적 경지의 자기연민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당시 일본의 패전과 내셔날리즘으로 비롯된 국가적 단위의 상실감을 느끼는 사회를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패배감, 권태로움을 매력적으로 묘사해냈기 때문이다.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자세한 상황과 배경에 대한 묘사의 디테일은, <인간실격>이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에 대한 묘사만으로 화제성을 사로잡았다고 말할 수는 없게 만든다. '스타는 빠와 까를 미치게 한다'던가. 그런 점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확실히 스타성이 있는 작가다. <직소(駈込み訴え, 직접 호소함)>에서 이스카리옷 유다가 예수를 배신한 사건을 각색하여 성인(聖人)이 아닌 인간 예수에 대한 사랑의 묘사에는 나 또한 감탄한 적이 있으므로...

한편으로 '부끄러운' 자신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다자이 오사무와 비견되곤 하는 당대의 문인인 미시마 유키오가 한 발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가면의 고백>을 읽으면 알수있다. 비록 기인으로 회자되고는 하지만 미시마 유키오가 가지고 있던 문학적 천재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는데, 그는 살아생전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 소식을 듣고 '우울증 따위는 체조만 해도 낫는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기인끼리 서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일까? 둘 모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점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에곤쉴레_자화상.jpg <자화상>, 에곤 실레, 1910.

사족으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은 세계문학전집의 <인간 실격> 표지인데, 에곤 실레도 만만찮은 막장 부류의 인간이었다고 한다. 예술에 몸을 담은 사람은 무언가 독특한 부분이 있는 것일까? 알수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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