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게워 내기

생각을 토(吐)하다

by 박창휘

뭔가 잘 못 먹으면 목에 걸린다. 혹은 너무 급하게 먹은 음식이 발단이 되어 체하게 될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토를 하기 시작한다.

게워 내는 것이란 무언가를 토한다는 것인데, 무언가를 게워내는 행위는 몸에 들어간 부정한 무언가를 내놓기 위한 일종의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썩은 냄새 등을 불쾌하다고 인식하는 것이 본능이자 일종의 면역 체계인 것처럼, 토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의 본능적 단위의 행위이다. 또한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 등을 도로 내놓음을 뜻하기도 한다. '게우다'라는 서술이 이러한 맥락에서 사용될 때는 보통 '부정부패'와 같이 권위 및 권력을 가진 이들이 '썩었다'고 일컬어짐과 동시에, 이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을 '토해내다', '게워 내다' 등으로 사용되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게워 내다'가 자주 사용되는 두 문맥에서, 우리는 둘 모두 '부정한 것을 내보낸다'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본래 먹고 씹으며 즐거움을 주고, 잘 소화되어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어야 했던 음식은, 급하게 먹거나 잘 못 먹게 되면 토해야만 하는 독이 된다. 깨끗하게 사용되어야 할 돈과 자산, 그리고 청렴해야 하는 권력은 부정한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게 되면 반드시 토해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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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워 내서─ 천천히 소화해야 하는 생각

나는 '생각'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카뮈와 부조리 철학을 조금 오랜 기간 동안 머리 한 켠에 두고 가끔, 막연히 그것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거듭하곤 했다. 그러나 카뮈의 발자취, 그리고 그가 쓴 책과 철학적 사상에 대한 상념에 잠기곤 할 때 특별히 이렇다 할 결론, 끝맺음에 도달한 적은 없다. 진득하게 생각할수록 흐름이 꼬이게 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스스로도 모르게 되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조금만 복잡해지면 이내 금새 그만 두고는 했다. 나는 이런 내 버릇이 못 써먹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왜냐하면 카뮈, 허무주의, 부조리 철학에 대해 속시원하게 해결되지도 않아서 머리 한켠에 계속 남아있는데다, 그러고 나서도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앞선 일련의 흐름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음식을 급하게 먹거나 많이 먹으면 체하듯 생각도 길게 할수록 본질과 결론을 잃어버리고 갈데없는 잡념이 돼버리기 때문에, 내가 그런 걸 반복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해낸 생각이라도 무턱대로 하나둘 진행해버리니 소화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을 게워 냈다. 알베르 카뮈, 허무주의, 부조리 철학이 무엇인지 등을, 맥락이 없더라도 천천히 써내려가다 보니 내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차츰 알게 되었다. 일종의 되새김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난 후, 줄곧 느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서사와 메시지의 연결성을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 글을 전부 작성하는 데에는 거진 반나절이 걸렸다. 그럼에도 (부족하나마 나에게 만큼은) 만족스러운 생각의 정리가 완성되었다. '구슬이 열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번뜩임도, 조리있고 일정한 맥락과 자연스러운 태(態)를 통해서 드러나야 비로소 쓸모가 생긴다. (쓸모가 아니라면 적어도 표현하고 싶은 바를 시원하게 토해낼 수 있다.) 그래서 자꾸만 드는 생각이나 정리가 되지 않는 머릿속 잡동사니가 있다면, 이렇듯 어수룩하게 나마라도 글로 적어 내려가면 완성하여 낼 수 있고 소화해 낼수있다.


게워 내서─ 그대로 버려야 하는 생각

소화가 되지 않는 생각도 있노라면 소화하면 안 되는, 독이 되는 생각도 있는 법이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틀어박혀버리는 것은 우리에게 독이 된다. 가령 버스에 탔더니 매일 먼저 인사를 건냈던 버스기사가 오늘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기사님이 왜 오늘은 인사를 안 해주지?', '내가 뭔가 잘못한건가?', '그러고보니 날 째려본거같기도' 하면서 이유를 쥐어 짜낸다. 내가 버스에 탄 몸동작, 카드를 찍는 자세, 표정 등... 그러나 짐작컨데 버스 기사가 인사를 하지 않았음은, 높은 확률로 도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던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던지 등의 이유일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그러할 것이다. 아니, 사실 인사를 하지 않은 이유야 뭐든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위에서 내가 잘못한 행동은 없다. 인사를 주고 받음에 대한 여부가 공사에 어떤 지대한 착오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사를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것을 생각하면 급기야 가히 피해망상이라고 할만한 수준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니 아무래도 좋을 일에는 생각을 그만 둬버리자.

생각을 그만 두는 것은 남의 무례한 태도에도 적용하면 좋다. 남이 무례하고, 교양이 없고, 예의가 없는 것에 우리의 잘못은 없다. 오히려 타인이 우리에게 신경질적으로 굴고 짜증내는 건 그들이 자각하여 왜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인지 생각해줄 필요가 있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화를 내는 거야', '저 사람에게 밉보이면 안되겠다'하고 움츠러드는 것은 되려 나에게 좋지 않은 행동이다. 타인의 무례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태도를 가다듬는 것은 자신이 남한테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회고와 반성으로 그치면 족할 일이다. 가지를 치는 생각으로 스스로 병들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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