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뇌와 우뇌, 오딘, 중용

by 박창휘

어제 본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왜 '생각하는 것'이 좋지만은 않은지에 대한 동영상이었다. 평소에 생각'만'해서,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고 느끼는 요즘의 나에게 딱 들어맞는 영상이었기에 홀린듯이 손이 갔다. (이것도 아마 알고리즘의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영상의 내용은 대충 이랬다.


뇌는 좌뇌와 우뇌로 구성되는데, 좌뇌는 우리가 딱히 이유없이 결정한 선택이나 행동에도 그럴듯한 이유를 붙인다. 여기엔 실험적으로 증명된 예시가 있는데, 거의 똑같은 여러 개의 사물을 놓고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지' 조사했더니 왼편의 물건보다 오른편의 물건이 훨씬 더 많은 선호를 기록했다고 한다. 물건들이 거의 똑같다고는 하지만 같지는 않으므로 선호에 따른 결과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선천적으로 많은 수의 사람은 좌뇌가 발달하여 태어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런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그 격차가 꽤 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유로 콕 집어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본능적인 선택에 가까운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설문대상자에게 '그 옷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하고 물었더니 '색이 좀 더 마음에 든다', '주머니나 단추의 위치가 마음에 든다'며 이유를 붙였다.


이처럼 그럴듯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 선택이나 행동에 합리화─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딱히 이득을 볼 게 무엇인지 잘 알수는 없지만─를 하는 것은 좌뇌의 역할이라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 등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남들이 듣기에 그럴싸하게 말하는 것', '사회적으로, 상황적으로 보기에 알맞은 이유를 붙이는 것'으로 좌뇌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수도 있다.


좌뇌가 무언가에 대해 억지로 이유를 붙여가면서까지 스스로를, 나를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은 일종의 범주화를 위한 라벨링(Labelling)을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추론 및 언어적 능력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라벨링이 마냥 좋은 것은 또 아니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기분이 안 좋은 날'이라고 좌뇌가 라벨링을 하게 되면, 우리는 딱히 비가 오는 날이라고 하더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필요가 없음에도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기분이 안 좋아지게 된다.


그러니 무언가를 하기 전에, 혹은 어떤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그 행동을 하고, 할 때는 다른 생각이 없이 당장 해야만 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할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는 생각은 당장 해야만 하는 일로부터 핑계를 만들거나, 회피의 발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상을 보면서 많이 동감했다. 뭔가를 하기도 전에 생각이 많아지는 건 유익한 점보다는 유해한 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득과 실을 저울질해보고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에 하지 않기만을 반복하다보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아주 자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계속 보고 있는데, 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왔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에게 몇번의 상담을 진행하다가, 한 번은 오른쪽 눈에만 큰 불길이 비추도록 환경을 조성하여 상담했더니 '상담 선생님이 무섭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는 좌뇌가 오른눈으로부터 불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얘기에는 쉽사리 동감하기 어려웠다. '그러면 오른눈을 감고 다니면 좌뇌가 시각적 영향을 안 받으니까, 우뇌가 더 발달할 수도 있나?', '그럼 그 반대로 하면? 만약 좌뇌와 우뇌 중 한 곳의 영향력을 더 크게 하고 싶다면, 의식적으로 한 눈을 감아도 효과가 있다는 걸까?'

생각을 많이하는 나는, 그러면 오른눈을 좀 감고 다닌다면 좀 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으니까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인 오딘(Odin, Óðinn)이 떠올랐다.

NKS_1867_4to%2C_97v%2C_Odin_on_Sleipnir.jpg 다리 여덟 달린 말을 탄 오딘, 한쪽 눈을 감고있다. 위키피디아.

오딘은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이다. 사족이지만 워낙 북유럽 신화가 바이킹 민족이나 지방마다 전승이 달라서, 최고신이 달라지고는 한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름이나 역할, 나타나는 모습도 굉장히 다양하다. 지혜의 신이기도 하고, 전쟁의 신이기도 하고, 천둥의 신, 미래를 보는 신, 현자, 무서운 존재, 광기를 관장하는 신 등으로 묘사되고는 한다.

오딘은 지혜의 샘물을 마시는 대가로써 자신의 눈을 바쳤다는데 ─최고신 쯤 되는 존재가 무언가를 취하기 위해 뭔가 바쳐야만 한다는 점도 재밌는 부분이다─ 바쳤다는 눈이 오른쪽 눈인지, 왼쪽 눈인지는 또 전승마다 다르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알수있는 시각을 가졌고, 무력이 아니라 지식과 지혜를 통해서 최고신의 자리에 등극하게 됐다고 한다.

오딘이 바친 건 어느쪽 눈일까? 재치가 뛰어났다고 하니 언어적 능력을 활성화하려면 왼눈을 바쳤을 것이다. 아니면 광기의 신이니까, 니체를 빌리자면 '디오니소스적 광기'란 주변과 나를 몰아일체 시키는 것이라고 하니 이는 오른눈을 바쳐야 했을 것이다.

아무튼 진짜 어떤 눈을 바쳤는지는, 북유럽 신화를 실제 신앙으로 받아들였을 바이킹도 각자 말이 다를 것이다. 오딘을 실제로 본 살아있는 바이킹은 아마 없을테니까...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무슨 눈을 바쳤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신화에서 말하고 싶은 은유적 메시지 중 하나는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왜냐하면 두 눈 모두를 바친 것도 아니다. 가끔 생각을 비우려면 명상을 하라고 하는데, 명상을 하면 눈을 감으니까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당장의 시각적 정보를 끊어냄으로써 일차적으로 외부의 정보를 끊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오딘은 한 눈만 보이지 않는다. 한 눈은 보인다.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용인 것이다.

영상에서 본 내용에서도 좌뇌가 하는 라벨링이나 구조화가 무조건 좋다고 말하지는 않았듯이 우뇌 또한 항상 좋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우리내 삶에는 중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때는 생각하지 말고, 생각이 필요할 때는 생각하라고.


으레 궁극이라는 건 멋있게 묘사된다. 영어로도 Ultimate인데, 뭔가 엄청나거나 한정판 같은 느낌으로도 붙는다. 그런데 궁극이라는 단어를 한 글자씩 풀어서 해석해보면 다하다 궁(窮)에 끝 극(極)자이다. 그래서 더할 나위 없는 경지에 이른 무언가로 묘사하고 싶을 때 붙는 단어인데, 이렇게 보니 조금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궁극에 이르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했다고 하면, 항상 좋지만은 않을거같다. 그러니까 중용이 중요하다. 뭐든 적당하게 하는게 중요한 법인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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