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프란츠 카프카<문학동네>
쫒겨나는 편이 차라리 내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오래전 구로사와 아키라의 회고전에서는 <살다>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시청 시민과 시마 과장의 이야기다. 영화의 한 장면엔 이런 대화가 오간다. 휴가철을 맞은 한 사무실이다.
a: 너는 왜 휴가를 아직도 가지 않았니? 일이 그렇게 많니?
b : 아니.
a : 그럼, 니가 휴가 가면 빈 자리가 너무 티날까봐 그러니?
b: 아니. 내가 휴가 가버리면, 내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이 드러날까봐 걱정이 되서 그래.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이처럼 날카롭게 포착한 유머도 드물겠다.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발버둥처도 역할은 순식간에 대체된다. 대체 가능한 시스템 속에 있기에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기회가 오고 나가는 얄궂은 운명 속에서 옴짝달쌀 할 수 없다. 비워지면 채워진다. 반격해볼 수도 있겠다. <살다>에서 구로사와 아키라가 일갈하듯 "일을 하고 있는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술을 시전하면서. 그렇다 해도 우리는 안전하지 않다. 비단 계약관계에서만 이러할까? 피와 유전자로 단단히 결합된 공동체인 가정은 어떨까? 가정에서라면 우리가 아무리 무용한 존재라도 안전할 수 있을까?
한 사내,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갑충으로 변해 있다. 아버지가 진 빚을 갚기 위해 채권자의 회사에서 출장 영업사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벌이에 기대 안락하고 무기력한 생활을 한다. 그레고르에 기생해서 살아가지만 그들 사이는 단절되어 있다. 그는 집에 머문 일주일 동안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신문을 보거나 기차 시간을 들여다보거나 할 뿐이다. 회상 생활은 불규칙한 식사, 갈아타야 할 기차 시간에 대한 강박, 얕은 인간 관계 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하다. "악마여, 제발 이 모든 것들을 다 가져가다오"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달프다. 빚을 갚고 돈만 모은다면 바로 사표를 내고 싶다. 하지만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신한 지금도 "당장 일어나야" 한다. "다섯 시면 기차가 떠나니까."
악마에게 주고 싶은 환멸만 남은 직장생활을 그레고르는 왜 그만두지 못할까. 뻔하다.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해서이다. 표면적인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카프카에 대한 구로자와 아키라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레고르는 회사에서든 가정에서든 자신의 쓸모를 장담할 수 없어서, 자신이 없어도 가족들이 잘 지낼까봐 두려워서 그만두지 못한 게 아닐까?
그의 두려움은 보란듯이 현실이 된다. 놀랍게도 그의 무쓸모가 증명될 수록 가족은 스스로 자신의 쓸모를 찾아낸다. 갑충으로 변신한 그레고르처럼 가족의 변신도 드라마틱하고 단단하다. 살이 찌고 무기력해 그레고르가 들어와도 손을 들었나 내리는 게 전부였던 아버지는 몇 달만에 금색단추가 달린 뻣뻣한 푸른색 제복을 입고 허리는 꼿꼿하며 생기 있는 눈빛을 반짝였다. 이 유니폼이 자신의 갑옷이라도 되는냥 집에서도 벗을 생각 없이 불편한 자세로 편하게 잠든다.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시작하며 집안일까지 거들고 집안에서 쓸모없다 여겨져 종종 혼이 났던 여동생은 점원으로 취직해 속기와 불어를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그레고르의 노고에 기생하던 가족들의 '충'적인 삶은 적당한 고난과 노동을 겪어내며 '인간'적으로 진화했다. 그레고르의 역할은 대체되었고, 사회에서도 가족 안에서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다.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란 없다. 가족관계에서마저도. 나라면? 엄마로서 딸로서 배우자로서. 엄마로서라면 완벽하게는 대체 못하겠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시인의 말처럼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일 수 있으니 아이는 더 잘 자랄 수도 있겠지. 결혼의 기능적인 면은 배우자에게 할당된 것이므로 배우자로서는 그레고르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 가장 대체 불가능한 역할이라면 엄마에게 딸로서의 내가 아닐까. 어떤 이야기를 해도 오해하지 않고 들어주는 딸, 때때로 완곡하게 타인을 포용하도록 권하는 딸로서 나는 엄마에게 대체 불가능하지 않을까. 인간관계의 기능적인 면이 가장 희미한 관계, 엄마와 나. 엄마라면 딱딱해진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으리라.
"정말?" 카프카가 묻는다. 중요한 질문이다. 너보다 성실하고 좋은 자식으로 보이는 그레고르도 아버지, 여동생 엄마에게 외면당했는데? 너라고 가능할까? "그러게 말입니다. 카프카님.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장담할 수 없어요. 아무리 이해관계가 희박한 관계라도 엄마와 나 사이에 대체하지 못할 역할이란 게 있을까요?" 대답하고 보니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나는 대체되길 원한다. 내가 없다면 자매들이 가족이나 건강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의 화를, 슬픔을 모두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오늘 얼마나 예쁜지 말해주고, 함께 팥죽을 먹어주면 좋겠다. 내가 없어도 아이들과 잘 지낼 새로운 엄마가 나타나면 좋겠다. 내가 없어도 인생의 새국면을 제공할 아내가 남편에게 있으면 좋겠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진 상태에서도 자신의 쓸모에 집착하는 그레고르와 달리 피할 수 없다면 대체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대체되는 필연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까진 좋다. 그렇다해도 벌레로 살아가는 동안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지의 문제가 남는다. 그레고르의 삶에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는 순간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애타게 찾거나 그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모성의 발로로 과한 체스처를 취하지만 아들을 위해 필요한 것은 실행하지 않고 자주 정신을 잃을 뿐이다. 여관에서 자듯 집에서도 방문을 잠그고 자는 잠자,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여동생의 형편없는 바이올린 실력은 알지 못하는 잠자. 벌레가 되는 순간 느꼈을 좌절감, 가족에게 느끼는 배신감, 바깥 세계를 향한 열망, 즉, 인간적인 삶에 대한 어떠 열망도 선택도 없이, 여전히 벌레인지 인간인지 모를 혼돈 속에서 조용히 쓸쓸히 죽는 잠자.
인간의 허물을 쓰고 생을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레고르의 삶은 껍데기 뿐이었기에 껍데기만 바꾸자 누구도 아닌 벌레가 되었다. 혁혁한 변신을 이루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은 인간의 모습이었을 때와 다를 바 없이 건조하고 무의미했다. 변신 전처럼 누구도 만나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고, 심심하면 실톱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유일한 취미였다면 이제 창밖을 보거나 벽을 타는 게 유일한 취미가 되었다. 이런 그에게 '바깥'이 변해도 여전히 나의 오빠, 나의 아들이라고 존재를 증명하고 집착할만한 '안쪽의 고유함'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겠는가. 역할은 고유하지 않지만 함께한 시간과 기억으로 서로에게 아로새겨진 존재의 고유함은 대체되지 않는다. 그레고르의 문제는 바로 이 점이었다. 허허로운 그레고르의 삶이, 그 고독과 외로움이 사무친다. 그가 자기 인생의 실체와 가족들의 실체를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죽었기에, 생생한 생을 위해 노력해보지 못하고 죽었기에 더더욱.
그레고르 잠자는 말한다 "그도 나처럼 잘릴 수 있는 거아니겠어?"말해 무엇하랴. 어디서든 누구든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잘리는 일이 꼭 나쁠 거라고 누가 알 수 있을까? 모른다. 그러니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내가 벌레가 되어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오늘의 즐거움과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것을. 열과 성을 다해 나답게 타인과 가족과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을.
다시 구로자와 아키라의 <살다>로 돌아가보면, 그레고르처럼 노예 같은 삶을 후회하던 시마 과장은 죽음을 앞두고 자기 앞의 생을 적극적으로 살아내고자 한다. 동네 주민들은 웅덩이를 해결해달라는 민원을 넣는다. 그는 선택한다. 예전처럼 민원서류더미에 처박지 않기로. 각종 반대와 어려움에도 웅덩이를 공원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처음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줬던 공원의 그네에세 죽음을 맞이하는 시마 과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 노래를 부르며 죽음을 맞이한다.
인생은 짧아요.
사랑을 하세요, 아가씨.
빨간 입술이 변하기 전에.
뜨거운 청춘의 피가 변하기 전에.
내일은 없는 거잖아요.
인생은 짧아요.
사랑을 하세요, 아가씨.
검은 머리가 변하기 전에
뜨거워진 마음이 변하기 전에.
오늘은 다시 올 수 없는 걸.
카프카와 구로자와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줌마도 다시 올 수 없는 오늘을 위해 가족과 저녁 식탁에 앉아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대화를 나눈 다음, 아이들의 수학 4쪽 풀이 시간을 이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