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를 읽고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는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주인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의 감정에 늘 솔직하고 충실한 주인공이 공감이 아니라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이 새롭다. 그는 자기 목숨을 살려준 지인 스트로브에게 비수를 꽂는다. 스트로브의 부인과 간통을 저질렀고, 간통을 저지른 여자 블란치가 자신에게 버림받고 자살을 하는데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삶에 간섭하려 했던 귀찮고 균형잡히지 않은 여자에 불과하다.
순간의 욕정을 불러일으킬 순 있어도 그의 자유와 이기적 속성의 두꺼운 껍질은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스크래치를 낼 수 없는 인간 스트릭랜드. 나와 친구들은 그를 자연재해같은 남자라고 했다. 생각할 수록 맞는 말이 아닌가. 그와 교감하는 건 불가능하다. 100을 주었으니 1을 달라고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제의 섹스가 오늘의 호의를 장담할 수 없다. 바람처럼 쓸고 가면 다시 재료를 모아 집을 고쳐야 하는 일일뿐.
나는 오랫동안 인간이 타인을 고려하고 자성하는 존재이며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제의 호의가 큰 탈이 없으면 오늘도 이어질것같은 느낌 말이다. 어제 케이크를 나눈 사이면 오늘 물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인은, 아니 인간은 내가 가진 이런 일관성 꾸준함에 대한 기대를 대체로 무너뜨렸다. 어쩌면 늘 리셋하는 중인지도 모르지.
타인의 수용은 늘 인내를 내포한다. 모두 다르니까. 어제 나는 A와 즐겁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오늘 12시에 만나서도 그러리라 철썩같이 믿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시간은 알 수 없는 냉기가 스민다. 오늘 12시에 만나서 환담을 나누어도 타인의 10시를 모른다면 어제 12시와 오늘 12시의 그가 엄연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기대하는 타인은 없는 셈이다.
그러므로 거대하고 종잡을 수 없는 자연과 손잡고 산책하고 내일을 약속하지 않듯이 인간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갈등이 있고, 어제와 다른 타인이라면 내 탓은 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늘 일관된 인간이 아니므로, 또 실수하므로 상대에게 의도가 있는 인간으로 읽히기 보다 자연의 일부라고 읽히고 그가 다시 자신만의 재료를 모아 그날 하루를 재건하길 권할 것이다.
자식에겐 어떤가.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고자 투쟁하는 모든 존재가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 앞에 놓인 장애물에 동요하기를 기대하기란 원래 어려운 일이 아닐까. 사춘기 아이를 보며 새삼스럽게 스트릭랜드를 이해한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대략 한 달 동안 그 이상 그리고 시험 당일까지 인스타그램을 부모 몰래 평균 5시간 이상을 한 아이를 앞에 두고 스트릭랜드의 냉정함, 뒤통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친구가 사경을 해매는 스트릭랜드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 준 건 스트릭랜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난 게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듯이. 이런 육아 환경 역시 아이가 꼭 원하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라는데 우리집엔 인스타그램이 되었다. 그야말로 활짝 피었다가 아직 지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와 스트릭랜드의 공통점이 있다면 속살에 스크래치를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웬만해선 타격이 없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엄살을 부리지만 그건 의외로 어떤 필요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생존해야 하니까. 그 외에는 자신들의 외피를 아주 두껍게 쌓는다. 부모의 억압, 위선, 불합리함이 외피를 더욱 두껍게 하고, 또래의 공감대가 속살을 채운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미지의 존재 앞에선 잠시 혼란스럽다. 잔인하게도 이런 혼란이 부부의 경계를 또렷하게 한다. 아이와 쌓아온 시간들 앞에 무력하다. 오래된 과거가 전혀 힘을 쓰지 못해서인지, 반대로 내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아이에게 선명한 과거가 드디어 힘을 쓰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무관할 지도. 개연성에 관한 카오스는 늪이므로 빠져나오기로 한다.
아직 뿌리를 떠나지 않고 가지에 매달린 열매다. 폭풍우로 땅으로 떨어지기 전에, 견뎌서 가지를 떠날 때가 될 때까지 더 여물고 당을 채워야 한다. 자연재해 앞에 단단한 뿌리, 유연한 가지를 드리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지 별 게 아니다. 올 여름의 폭풍은 나에게 평생의 폭풍과는 다른 폭풍이 될까, 나에게 스크래치를 낼 수 없는 폭풍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