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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을 Dec 01. 2023

광명역에서

엄마와 언니가 각자의 곳으로 돌아간다. 일주일만에. 광명역에서 엄마와 언니를 차례로 보내고 나오니 눈발이 싸라락 날린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가 떠오른다. 그 시에 우리 세 모녀를 넣어본다.


광명역에서


엄마와 언니의 기차 시간은 숨막히게 서둘러 왔다. 

구멍난 고목 탁자 위로 아쉬움이 쌓이고

바닐라 향이 물씬한 뜨거운 커피가 

헤어짐을 덥히고 있었다. 

그믐처럼 지름을 잃은 세월을 견딘 눈빛에 

여전히 호기심이 서려있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리더기에 신용카드를 꽂아 주었지.

내면 깊숙이 할 말이 가득해

일주일을 비워냈어도

모두들 아직 할 말을 다하지 못했다. 

산다는 것이 때로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떠들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어제 나눈 서로의 가방과 옷

당근발 나눔, 그 만족감 사이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까맣고 하얗고 바닐라 향에 입술을 적신다.

정오 넘어 익숙함도 친숙함도 다 설원인데

발받침을 닫고 이음새를 지우면

이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행복했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따뜻한 눈빛을 언니에게 던져 주었다.


12시 35분 목포행 기차가 도착했다. 엄마가 기차에 오른다. 승객 탑승이 마무리될 즈음 플랫폼을 뛰는 남자가 나타난다. 플랫폼을 뛰는 사람이 없는 기차역이 있으랴. 제자리에서 뛰고 있는 남자 곁으로 기차가 다가오는 것처럼 정속으로 열심히 뛰는 남자. 역무원들이 조용히 그를 주시하고, 그가 몇 걸음을 남기고 기차로 뛰어들 준비를 하자 팔을 세차게 흔들어 기차를 출발시킨다. 


1시 17분 언니와 마지막 남은 수다까지 교환한다. 그리웠던 순간보다는 원망했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뒷담화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서로를 깊이 안아준다. 승차를 마무리할 즈음 부산행 기차와 나란히 뛰는 여자가 나타난다. 역무원들은 그녀가 타기 직전 팔을 유려하게 돌려 기차의 진행을 재촉한다. 그들이 몇 번째 몇 걸음을 남기고 있는지까지 아는 것만 같다. 


KTX가 생기던 해 기차에서 친구를 보내던 날도 추웠다. 친구가 타고 기차가 문을 닫았다. 문이 미끄러져 들어가 빈 공간을 채우고 발받침이 소리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문을 닫았다라는 표현을 옳지 않았다. 플라나리아가 제 몸을 되살리듯 몸체를 이탈한 부분들이 전체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음새는 사라졌다. 유려한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덜컹덜컹 온갖 소음과 함께 달리고 이음새가 뚜렷했던 투박한 기차들은 사라져야 마땅했다. 기차가 멈추고 출발하는 순간을 어린왕자가 해너미를 보듯 반복해서 보고 싶었다.


기차의 승객은 주로 나였다. 섬에서 목포로, 목포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서울로 오랜 정착 없이 거주지를 이동했고 떠나왔다. 가족이 생긴 뒤로는 가족과 함께 오리지널 가족을 남기고 이동했다. 30년 가까이 떠나오면서 플랫폼을 서성이는 감정을 알지 못했다. 기차가 자신을 단장하는 모습 역시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셋이 되자 기차를 탈 일이 없었다. 아이들이 더 크자 친정으로 여행가는 딸, 딸집에 오셨다 가는 엄마, 동생 집에 왔다 가는 언니가 탄 기차들 안을 보느라 기차가 다무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기차는 우아하게 자신을 매만졌겠지. 매근하게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엄마가 먼저 가고 언니가 차례로 떠나니 오랜만에 겪는 이별이라 일상의 틈새가 벌어져서 매끄럽게 닫히지 않는다. 


좀전엔 뛰는 승객을 보며 AI의 역할을 떠올려보았다. AI 승무원이라면 어떻게 될까? 기차를 놓칠 새라 뛰는 고객을 안고 뛴다. 기차시간에 맞춰 고객을 밀어넣는다. 이 역할은 필요할까? AI 승무원의 안고 뛰기 역할은 승객의 급박함을 줄이는 데 기여하지 못하겠지. 뛰었던 승객은 어디선가 반드시 뛰어야 AI 승무원 눈에 띌 것이니까. 이전에는 10분 여유를 두었다면 이제 20분 여유를 부릴 것이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텅 빈 기찻길을 바라본다. 날이 춥다. AI에게는 남아 있는 이를 위로하는 역할이 더 적절하다. 체온을 40도로 유지한 AI가 나를 꼭 안아준다. 아, 따뜻하다. 네가 있어 다행이야. 우리 함께 플랫폼을 벗어나지 않을래? AI는 말한다. 추가 요금 발생. 유료였어...? 몸을 덥히는 게 어찌 공짜? 


다음날도 가족이 떠난 자리가 허하기만 하다. 흔들흔들 짐볼 운동을 끝내고 스트레칭을 하는 시간이다. 인터벌 강사님이 모두 앉아보라며 특별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린다. 불길하다. 어제의 상실이 살아난다. "제가 12월까지만 하고 그만두게 되었어요. 딱 10년 이제 마무리예요. 공단 측에서 일방적으로 제 수업 중 2시 수업을 하나 없앴고, 제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재활이 필요해요." 10년을 함께 해온 제일 앞줄의 회원들이 운다. 강사님도 눈물을 참지 못한다. 눈물은 플랫폼으로 떨어진다. 엄마를 떠나보낸 그 자리로 돌아가 기차역 밖의 싸리눈을 맞는다. 가슴 속에 얕게 쌓인다. 


남아 있는 입장이 되었다. 결혼 이후, 그리고 아이들이 크면서 더더욱. 결혼 이후 자처해서 떠난 일은 없기에 자처한 헤어짐도 없었다. 동네를 떠나는 이들은 많았다. 얼마 전 지인이 아이 교육을 위해 목동으로 떠나면서 새로 적응해야 할 것을 걱정하며 위로를 구했다. 그 심정을 모르지 않지만 더 나은 곳으로 떠나는 이보다 더 못한 곳에 남아 있는 내가 더 위로받아야 할 판이 아닌가, 서운함이 고개를 든다. 떠나는 이도 남아 있는 이도 위로가 필요한 거겠지. 어느덧 만남도 이별에도 취약한 나이가 되었다. 


15년 가까이 제자리에 박힌 나의 플랫폼도 단단하지 않다. 불현듯 언니가 있는 부산으로 이주하고 싶은 생각, 인터벌 강사님을 따라 운동 유목민이 되고 싶은 심정, 새로운 강사님에 대한 걱정, 바닥이 물렁해진다. 갑자기 어디로든 떠나서 떠나온 곳에 구멍을 내는 쪽이 되고 싶다. 


사회에선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 누군가의 일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 이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으므로, 남아 있는 쪽도 떠나는 쪽도 모두 여행자이자 이방인이다. 오래 머물렀더라도 바닥은 어디서든 늪처럼 삼켜질 수 있다.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에서 꼬마 잉마르는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자 삼촌에게 맡겨진다. 혹 엄마가 나 때문에 병세가 악화된 게 아닐까, 하는 쓰라린 자책감을 안고 기차에서 내리는 잉마르를 맞이하는 삼촌은 "네 탓이 아니야"라고 하며 꼭 안아준다. 이 순간이 젊은 날 이방인으로 떠돌던 나에게 힘을 주었다. 돌아가는 엄마도 언니도 기차역의 포옹에선 늘 이런 메시지가 남는다. "잘하고 있다." 플랫폼의 포옹은 서로를 단단하게 하는 순간이다. 기차에서 내린 곳에서 살아갈 에너지를 주는 순간.


라세 할스트롬 <개 같은 내 인생>


엄마와 언니는 일주일 내내 살림 하수인 나의 집을 샅샅이 뒤집어 깨끗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뒤바꿔 놓았다. 다시 그녀들이 올 때까지 이 세팅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엄마와 언니가 디자인해놓은 공간 안에서 살아가고, 언니와 엄마와의 포옹으로 기운을 차릴 것이다. 


뱃살과 엉덩이 근육을 책임져서 중력을 하루라도 거스르도록 힘을 주었던 강사님은 포옹도 악수도 거부할 테지. 힘든 운동 끝의 신음소리를 야단쳤듯 어떤 이별의 제스쳐도 거부한 채 씩씩하게 이별하길 원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포옹을 보낸다면. 


"나의 강사님, 일상의 비타민이었어요. 젊을 땐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몸을 바꿔보니 타인의 몸을 바꾸는 일이 더 어렵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 한 시간으로 타인의 습관과 몸을 바꾸셨잖아요. 제 몸도 강사님으로 인해 달라졌어요. 마음도 당연히 달라졌습니다. 강사님과 만들어온 몸, 습관 유지하려고 애쓸 겁니다. 요요 없이 건강히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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