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에 온사람

14장. 같은 방향으로 걷는 마음

공원을 나와 각자의 길로 돌아간 뒤에도
그날의 공기는 오래 남아 있었다.


수진은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창문을 열자
저녁 바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오늘은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누군가와 오래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많이 웃지 않았는데도,
마음이 편안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조용히 생각했다.


이 관계는
이상하게 힘이 들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고,
괜히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게 더 낯설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오늘 좋았다.”


준호였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수진은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답장을 썼다.


“나도.”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다음엔 조금 더 걸어도 될 것 같아.”


보내고 나서야
자신이 웃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날 밤은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준호에게서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럼 이번엔 조금 멀리 가볼까.”


수진은 그 문장을 읽고
창밖을 바라봤다.


하늘은 맑았고,
햇빛이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조금 멀리.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단순히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것,
조금 더 마음을 내어주는 것.


수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어디로?”


곧 답이 왔다.


“바다.”


그녀는 그 한 단어를
천천히 읽었다.


바다.


갑작스럽다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예전의 그녀였다면
아마 바로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짧게 답했다.


“좋아.”


보내고 나서
가슴이 아주 조금 뛰었다.


서두르지 않기로 했지만,
멈추지도 않기로 했으니까.


수진은 조용히 생각했다.


이번에는
같은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봐도 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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