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봄에 온 사람

13장. 두 번째 오후

by 늘푸른자연 정동숙

두 번째 약속은 일주일 뒤였다.


이번엔 그녀가 먼저 도착했다.


카페 대신 공원 옆 작은 식당을 정했다.
창가 자리는 햇빛이 길게 들어와
사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보이게 했다.


그가 들어왔을 때,
첫 만남 때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지는 않았다.


대신,
“아, 왔네.”
하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내가 안 늦었지?”


“응. 나도 방금 왔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다.


메뉴를 고르는 동안
어색한 침묵은 없었다.


“요즘 뭐해?”


그가 물었다.


그녀는 조금 생각하다가 말했다.


“별거 없어.
아침에 운동하고, 책 좀 읽고…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어렵지 않아?”


그녀는 웃었다.


“처음엔 힘들었지.
근데 지금은 좋아.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시간도.”


그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난 아직 그게 좀 어려워.”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내가 쓸모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


그 말은
그의 지난 시간을 보여주는 고백 같았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우린 너무 오래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살았잖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게
생각보다 편해.”


그녀는 그 말이 좋았다.


설렌다기보다
편하다는 말.


젊은 날에는
설렘이 사랑의 증거였다.


지금은 다르다.


말을 아껴도 어색하지 않고,
침묵이 부담스럽지 않은 시간.


그녀는 물었다.


“우리, 다음엔 산책할래?”


그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웃었다.


“좋지.”


이번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식사를 마치고 공원 쪽으로 걸어 나왔다.


햇빛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길.


둘은 나란히 걸었다.


어깨가 스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녀는 생각했다.


이 정도 거리면 괜찮다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약속이
이렇게 조금씩 지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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