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에 빠지다
일정대로 계속되는 여행 속에서 목적지 이동은 기차, 버스, 택시로 해야 했다. 그때마다 딸의 수고가 절실할 수밖에 없었고, 새롭게 접하는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엄마와 딸은 같은 배를 타야만 했다. 이 지점이 여행의 시작이 달랐던 두 마음을 점차 하나로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여행이 자리를 잡아가니 그림이나 책에서 보아왔던 유적들과 새로운 음식이 호기심 많고 도전에 거리낌 없는 모녀에게 더없이 기분 좋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베네치아의 구불구불한 수로를 따라 걷고 또 걷다 발끝에 닿는 카페에 앉았다. 여기저기 알 수 없는 빨간 음료를 테이블 위에 놓고 서쪽 하늘로 떨어지는 태양의 긴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나 역시 새로움을 마주할 마음이 충분했기에 당당하게 이 매혹적인 음료를 주문했다.
이것은 오렌지빛 음료에 투명한 얼음과 함께 장식용으로 더해진 오렌지 반쪽이 섞여 있었다. 이 붉은 오렌지빛 음료 스프리츠는 석양의 노을과 함께 떨어지는 태양 빛을 가득 담은 투명하면서도 짙은 빨강으로 다가왔고 이렇게 첫 만남은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식전주로 마시는 스프리츠는 복숭아 모양의 와인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오렌지를 발효해 만든 술 아페롤과 이탈리아 스파클링와인 그리고 탄산을 적당히 넣어 만드는 음료인데, 남은 이탈리아 여정에서 늘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