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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 Jan 07. 2024

스프리츠에 풍덩 #3

빨강에 빠지다

  딸아이는 나의 역류성식도염을 걱정하여 식전주도 술이라며 말렸지만, 본 고장에서 경험하는 기회를 마다하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이탈리아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영롱한 빛깔과 시원하고 달콤하여 알싸하게 톡 쏘는 탄산의 맛은 과연 일품이었다. 식을 줄 모르는 스프리츠 탐닉은 남아 있는 모든 점심과 저녁을 같이하며 여행 내내 계속되는 뜨거운 태양과 무거운 발걸음에 활력을 채워주는 고마운 음료가 되었다. 


  걷고 또 걷는 뚜벅이 여행에 쉽게 찾아오는 허기는 너무도 반가웠다. 공식적으로 식전주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 점심의 스프리츠는 사랑이었다. 식사로 피자와 스파게티를 주메뉴로 고르고 스프리츠를 곁들이면 세상에 이런 즐거움이 없다. 가벼운 햇살과 함께 오전의 피로와 갈증이 풀리고 눈과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니 매번 한잔으로 끝내기가 어렵기만 했다.     


  피렌체에 머물며 수없이 지나쳤던 산타마리아 노벨라 광장 카페에서의 스프리츠, 로마 나보나 광장의 화려한 분수와 그곳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곁들이던 스프리츠도 잊을 수 없다.    

 

  지난여름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과 더불어 맛있는 음식, 특히 빨간 스프리츠의 매력으로 자칫 경직되거나 나른해질 수 있는 모든 시간이 청량하게 채색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은 그 맛이 아련하여 수없이 스프리츠를 만들고 또 만들었지만,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빛깔과 맛을 내기란 쉽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의 분위기와 이야기가 담겨야 제맛이 나는가 보다. 냉장고 한쪽에 빨간색 아페롤 반병이 남아 있다. 여름 내내 도모한 스프리츠 맛 내기 흔적으로, 이걸 보면 뜨겁고 강렬했던 6월의 이탈리아가 생각난다. 이제 막 시작된 겨울이건만 여름이 벌써 그리운 건 온전히 이 빨간색 음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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