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 5월의 수집함이 유난히 묵직한 이유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가정의 달 5월이 되면 우리 가족의 시간은 정신없이 휘몰아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단연 우리 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매년 그러하듯, 어린이날은 아이의 들뜬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커다란 키즈카페에서 땀이 뻘뻘 나도록 뛰어놀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영화관으로 향해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재미난 영화를 친구들과 함께 봅니다. 마무리로 두 손 가득 선물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얼굴에는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되자 아이는 고사리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오후에는 전교생이 모두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동네 어르신들 앞에 나란히 서서, 며칠간 연습한 안무와 함께 구성진 트로트 '무조건'을 목청껏 불렀습니다. "짜라자라짠짠짠!" 아이들의 재롱에 주름 가득한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피어났고, "아이고, 잘한다~!" 하시며 여기저기서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한 어르신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빳빳한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 아이들 한 명 한 명 전해주실 때 아이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지요.
어버이날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며칠 뒤, 스승의 날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는 지금 함께하는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에 계시지 않은 선생님을 위해, 또 다른 편지 한 통을 정성껏 써 내려갔습니다. 우리처럼 작은 학교의 선생님들은 규정상 2년을 보내고 나면 다른 곳으로 떠나셔야만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오래 뵙고 싶은 마음에, 정이 들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별의 순간이 늘 야속하게만 느껴집니다. 아이는 보고 싶다는 인사와 함께, 요즘 학교 소식을 빼곡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고 기억하는 것 또한 배움이라는 것을, 아이는 이 작은 학교에서 온몸으로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의 의미를 배우는 스승의 날이 지나고,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현장 학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모내기' 체험이었습니다. 질퍽한 논에 처음 발을 내디딘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습니다. 혹시나 거머리가 나올까 무서워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했고, 발이 푹푹 빠지는 낯선 감각에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친구들과 함께 허리를 숙여 작은 모를 심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저녁 아이는 밥을 먹으며
"엄마, 오늘 너무 힘들었어. 이제 밥 안 남길 거야. 진짜로."라는 단호한 다짐을 들려주었습니다.
허리를 펴기 힘들었던 고단함과 발이 빠지던 그 막막함이, 아이에게 밥 한 톨의 무게를 온몸으로 가르쳐준 하루였나 봅니다.
정신없이 지나간 5월을 돌아봅니다. 키즈카페의 시끌벅적함과 논두렁의 고요함. 부모님께 드린 편지의 수줍음과 마을 어르신들 앞에서 불렀던 노래의 당참, 그리고 떠나간 스승을 향한 그리움과 흙내 나는 노동의 가치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의 5월 수집함은 예쁜 포장지와 편지들, 그리고 흙 한 줌과 그리움 한 스푼의 추억으로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채워졌습니다.